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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의 樂카페]세월이 가면 명작도 바뀌나

김현식 기자I 2023.11.06 06:30:00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사진=이데일리DB)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근래 미국의 유명 음악언론 ‘빌보드’와 ‘롤링 스톤’이 선정한 위대한 가수, 앨범, 연주자 리스트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003년 롤링 스톤이 500대 명반을 뽑을 때 1위는 물론, 10위권에 비틀스 앨범이 4장이나 포진해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년이 채 안 된 2020년에 조사했을 때는 비틀스 앨범이 톱10에 한 장만 덩그러니 올랐다. 이것만으로도 음악팬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올해 10월 공개된 같은 잡지의 ‘250인 기타리스트’ 명단에도 당황한 사람들이 꽤나 많았을 것이다. 수년 전인 2015년 앙케트에서 1위 지미 헨드릭스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이 이번 조사에선 35위로 크게 밀려났다. 대신 이전 조사에서 순위에도 없던 디스코 시대의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는 7위로 진입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아마도 ‘겟 럭키’라는 노래를 비롯해 그가 새 시대 젊음과 소통에 성공한 덕분으로 생각된다.

막 발표된 빌보드의 ‘베스트 팝송 500곡’의 결과에도 상당수 음악팬들이 어이없어 했다.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 가운데 널리 알려진 명곡들을 제쳐놓고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를 1위로 선정한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였다. 아무리 그래도 500곡 안에 비틀스 노래를 3곡,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곡은 겨우 하나 올려놓은 것은 좀 너무하다는 핀잔을 들을 만도 하다.

세월이 흐르면 강산도 바뀌는데 하물며 유행에 민감한 대중음악의 양상이 바뀌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가공할 새 장르 힙합이 생겨난 지도 50년이 흘렀고, 로큰롤은 내년에 어느덧 70년의 역사를 축적한다. 사회적 변동에 맞춰 최근 흑인 가수와 여성의 존재감이 대폭 상승했다. 의당 가수와 노래, 연주자의 이름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명곡·명작·명가수라는 타이틀은 통속적인 유행가가 갖는 ‘잊힘’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세월에도 불고하고“라는 타임리스를 부여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지금 젊음이 엘비스와 비틀스를 잘 모른다고 우선순위에서 내리는 것은 타임리스를 스스로 부정하고 세대 간 연결고리를 끊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사람들은 바뀐 것만 주목할 뿐, 바뀌지 않은 것에는 관심이 덜하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인구에 회자되는 노래와 가수, 연주자는 얼마든지 있다. 빌보드 팝송 500곡 리스트의 높은 순위에 오른 아바의 ‘댄싱 퀸’, 템테이션스의 ‘마이 걸’,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이 잘못됐다고 할 사람 누구인가. 엘비스와 비틀스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사람이 젊다고 해서 당대의 가수만 알고, 오래된 가수와 노래에 벽을 쌓는 것 또한 아니다.

얼마 전 음악웹진 이즘이 행한 ‘한국의 최고가수’ 설문에서는 왕년의 가수들이 다수 거론되어 전설의 위력이 다시금 증명됐다. 설문에 응한 평론가 39명의 대다수가 1980년대, 1990년대 출생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필 1위, 이미자 2위, 나훈아 4위 등 그들이 태어나기 전 활동한 가수들을 높은 순위에 올려놓았다. 이미자를 언급한 한 20대 평론가는 “나보다는 부모세대가 좋아했지만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전설”이라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심지어 표본에 없었던 그 이전의 가수들 이난영, 남인수, 현인을 꼽은 젊은 평론가들도 있었다. 문화를 순위로 계정하는, 이른바 통계와 앙케트를 혐오하는 사람들도 많다. 광적으로 주관적인 분야의 작품을 객관화·서열화하는 것, 예술의 명작에 순위를 매기는 것은 모순적이다. 그럼에도 세월과 함께 무한대로 쌓이는 콘텐츠의 궤적들 속에 흐름과 줄기를 잡는 작업은 흥미롭다. 옛것을 현재시제로 불러내 ‘계승’의 가치를 얹히는 것이다. 확실히 세대 연결은 예술의 위대한 지향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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