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우리 강아지 병원비에 한숨 푹…반려동물 진료비 표시제 안착할까

양지윤 기자I 2021.05.21 05:55:00

서울시의회 반려동물 진료비 표시제 지원 조례 통과
서울시가 표시 장비 등 설치비 지원…"진료비 투명성 확보"
보호자 10명 중 8명은 진료비 부담…17%는 "과잉진료 의심"
"진료항목 표준화도 안 됐는데"…일선 동물병원 난색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서울 성북구에서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김모 씨는 이사를 할 때마다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반려견이 심장병을 앓고 있어 동물병원에서 주기적으로 건강상태를 살펴야 하는데, 각 병원마다 진료비가 천차만별이어서다. 김 씨는 “어떤 동물병원을 이용하냐에 따라 최대 2배까지 차이가 나다보니 진료비가 비싼 곳은 과잉진료를 하는지 의심부터 하게 된다”면서 “반려동물 진료비 표시제가 빨리 정착돼 집 근처 동물병원을 부담없이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15일 서울의 한 동물병원에서 수의사가 반려견에게 광견병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이른바 ‘묻지마 진료비’ 관행을 없애기 위해 이달 초 ‘서울시 반려동물 진료비 표시제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마련되면서 안착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반려동물 보호자들은 동물병원마다 제각각인 진료비가 예측 가능해졌다며 반기는 반면 일선 동물병원에서는 현장에서 혼란만 일으킬 것이라는 반발 기류가 감지된다.

20일 서울시와 시의회에 따르면 시의회는 지난 4일 ‘서울시 반려동물 진료비 표시제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주요 내용을 보면 동물병원은 주요 진료항목의 진료비를 이용자가 보기 쉬운 장소에 게시하고, 서울시장은 진료비 표시제에 참여한 병원에 대해 예산 범위에서 표시 장비 등 설치비용을 지원토록 했다.

◇보호자 10명 중 8명 진료비 부담…“17%는 과잉진료 의심”

시의회가 조례 제정에 나서게 된 것은 반려동물 인구가 증가하면서 병원비와 과잉진료로 인한 불만이 커지고 있어서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해 10월 동물병원 이용 경험이 있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7%는 진료비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동물병원 관련 소비자 불만족으로는 과잉진료 의심이 16.7%로 가장 많이 꼽혔고, 진료비 사전 고지 없음(15.8%), 진료비 과다 청구(14.1%)가 뒤를 이었다.

조례 대표발의자인 이은주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은 “현재 반려동물 진료비는 동물병원에 따라 진료비 편차, 진료비 게시 규정 부재 등으로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면서 “동물병원의 진료비 표시제를 통해 시민과 반려동물 소유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동물병원에 대한 소비자 선택권이 보다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도 시의회의 조례 공포가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진료비 표시장비에 대한 예산지원을 통해 반려동물 진료비 표시제가 확산될 수 있도록 하고, 궁극적으로 반려동물 진료비의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접촉한 한 반려견이 검체채취를 받고 있다.(사진=뉴스1)


◇진료비 투명성 확보 vs. 진료 중 일일이 고지? “탁상행정”

반면 서울시수의사회는 서울시의 진료비 표시제 지원 조례안에 난색을 표하고 았다. 동물병원의 진료항목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진료비 고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각종 예방접종이나 구충제는 비용을 사전 안내할 수 있지만, 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료비를 일일이 책정하고 안내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일선 수의사들의 전언이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한 수의사는 “반려동물은 혈액검사와 엑스레이, 초음파 등 어느 부위와 어떤 장비를 쓰느냐에 따라 진료비가 다를 수밖에 없다”며 “병명을 알 수 없는 경우 여러 검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진료 과정에서 일일이 진료비를 설명하고 보호자들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동물병원의 폭리로 진료비 표시제 도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반려동물에 대한 의료행위 표준화가 정해지지 않는 상태에서 도입되면 일선 병원들의 가격 경쟁만 부추기게 되고 의료서비스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중앙정부 정책과 중복돼 행정력 낭비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1일 동물 진료에 관한 동물 소유자 등의 알권리와 진료 선택권 보장을 위해 수술 등 중대 진료에 대한 설명과 동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수의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수의사는 수술 등 중대 진료를 하는 경우에는 동물의 소유자 등에게 진단명, 진료의 필요성, 휴유증 등의 사항을 설명하고 서면으로 동의를 받도록 했다. 동물병원 개설자는 주요 진료항목에 대한 진료비용을 동물 소유자 등이 쉽게 알 수 있도록 고지하고, 고지한 금액을 초과해 진료비용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법안에 담겼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