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달 들어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이달 1~19일 사이에 2조 7227억원 늘었다. 이런 추세로 가면 월간으로는 증가액이 4조 1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지난달 증가액(9조 6000억원)의 43% 수준이다. 가계대출 증가의 주된 원인이었던 주택담보대출도 이달 들어 일평균 신규 취급액이 지난달의 64% 수준으로 줄었다. 이는 은행권의 잇단 억제 조치와 이달부터 시행된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가계대출은 금리 인하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 19일(한국시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낮춘 데 이어 연내 한두 차례 추가 인하를 예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한은)도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하지만 급증하는 가계대출이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제 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불어난 가계부채가 금융은 물론 한국경제 안정과 성장을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국내외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급증세가 한풀 꺾임에 따라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파란불이 켜졌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은이 제시한 목표 범위(2%) 안으로 들어왔다. 이달에는 가계대출 증가세도 현저히 둔화하고 있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 급등세가 누그러든 것도 긍정적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셋째 주 서울 아파트 값 상승률은 0.16%로 전주(0.23%)보다 0.07%포인트 낮아졌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한은이 다음 달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문제는 금리를 내릴 경우 가까스로 수그러들기 시작한 가계대출과 집값에 다시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되지 않겠느냐는 점이다. 세계 주요국들은 지난 2년 가까이 지속된 고금리하에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2%(3월 말 기준)로 세계 주요국 가운데 5위를 기록했다. 금리 인하가 가계대출 증가에 새로운 불씨가 되지 않도록 금융당국이 선제적 대응 노력을 강화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