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상반기 자산 매각이 늘었다는 점은 같지만 투자면에서 코스피 상장사는 자산 매입과 신규 시설투자를 줄인 반면 코스닥 상장사는 늘려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코스닥 상장사들 중에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반도체장비 등 코로나19 수혜를 기대해볼만한 업종의 기업들이 공장부지와 기계장치 등을 발 빠르게 사들이면서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모습이다.
◇ 의료·제약·IT·반도체…부지 확보 나선 장비株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코스닥 상장사들이 공시한 유형자산 양수건은 총 30건으로 이 가운데 의료장비 및 서비스업 기업은 제이엘케이(322510), 천랩(311690), 리메드(302550), 마이크로디지탈(305090) 등 4개사로 집계됐다.
제이엘케이의 경우 사업 확장을 위한 연구 시설 및 사무실 확충을 이유로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토지와 건물을 238억원에 양수했다. 제이엘케이는 최근 미얀마, 쿠웨이트, 태국 등에서 인공지능(AI) 폐질환 분석 솔루션(JVIEWER-X) 납품 계약을 잇달아 성사시키고 있다.
천랩도 사업 확장을 위한 생산시설, 연구시설 확충을 위해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토지 및 건물을 230억원에 양수했다. 지난달 천랩은 코로나19 신속 항체 진단키트를 출시하고 수출 준비도 완료했다.
마이크로디지탈은 의약품 제조 품질관리(GMP) 시설 확보를 위해 15억원 규모의 토지 및 건물을 양수했다. 지난달 마이크로디지탈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코로나19 대용량 항체 진단키트 수출허가 승인을 획득했다.
문경준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진단키트 기업들과 같이 코로나19와 관련된 기업들은 연구시설 확충에 힘을 쓰고 있다”며 “생존을 위해 유형자산을 매각하는 기업들과는 입장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테스나(131970), 네패스(033640), 한양디지텍(078350), 램테크놀러지(171010) 등 반도체 및 관련 장비 기업들도 사업 확대를 위해 잇달아 유형자산 양수에 나섰다.
테스나의 경우 이미지센서(CIS)증설에 따른 신규 장비 취득을 위해 720억원 규모의 반도체 테스트 장비를 이달 말에 양수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작년 테스나는 271억원을 들여 생산능력(CAPA) 확대를 위한 신규시설 투자에 나선 바 있다. 테스나의 주요 고객사는 삼성전자(005930)다.
네패스의 경우 자회사인 네패스아크의 반도체 테스트 수요 증가분에 대한 생산능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610억원 규모의 반도체용 테스터 생산설비를 양수할 방침이다. 취득 예정일자는 올해 말이다. 네패스아크는 올해 기업공개(IPO)가 목표다.
신규 시설투자에서도 18곳 가운데 5곳(KMH하이텍(052900), 뉴파워프라즈마(144960), 램테크놀러지(171010), 에스앤에스텍(101490), 마이크로텍(227950))이 반도체 및 관련장비 기업들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한국거래소 수시공시 규정상 자산 매입이나 투자 규모가 최근 사업연도 말 자산총액의 10% 이상이면 유형자산 양수 및 취득으로, 그 이하거나 별도 공장 신설이면 시설투자로 공시한다.
이외에도 비엠티, 에쎈테크, 자비스, 화성밸브 등 기계업종과 라닉스, 대보마그네틱 등 전자장비 및 기기업체, 경동제약, 아미코젠 등 제약 관련 기업들이 유형자산 양수를 공시했다.
한 코스닥사 관계자는 “코로나19가 기존 위기와는 다르게 피해를 보는 업종과 수혜를 입는 업종이 극명하게 갈렸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수혜가 기대되는 기업들은 선제로 유형자산을 확보하려 한다”고 말했다.
◇ 코로나 타격…유형자산 팔아 성장성 확보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백화점과 자동차부품, 건축자재 등과 관련된 기업들은 유형자산을 팔아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다.
지난달 서부T&D(006730)는 3641억9600만원 규모의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 스퀘어원 토지 및 건물을 신한서부티엔디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에 양도한다고 공시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서부T&D는 신한서부티엔디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의 주식 2167만4451주를 1244억원에 현물출자 방식으로 취득하기로 했다.
서부T&D 측은 “부동산 유동화를 통해 차입금 상환에 나설 것”이라며 “동시에 양도목적물을 재임차하는 책임임대차계약을 체결해 자산양도 전과 동일하게 스퀘어원을 운영할 것”이라고 전했다. 서부T&D는 용산 드래곤시티 호텔을 개발하면서 차입금이 증가해왔다.
럭슬(033600)은 지난 4월 재무구조 개선 및 부동산 개발사업 참여(시행사업의 수익지분 30%)를 위해 350억원 규모의 경기도 평택시 산단로 소재의 토지 및 건물 전부를 삼성스마트하우징에 양도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윈하이텍(192390)은 지난 2월 서울시 도봉구 소재의 토지 및 건물을 340억원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총 매매대금은 850억원, 관계기업인 윈스틸과 윈하이텍이 소유한 부동산 전부를 양도하는 계약으로 윈하이텍의 양도 규모는 도봉동 소재 토지 및 건물의 지분 40%다.
윈하이텍 측은 “부동산 경기침체로 수익성이 악화된 시장 분위기를 감안했을 때, 큰 시세차익을 실현했다”고 전했다. 윈하이텍은 2016년 해당 자산을 184억원에 매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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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준히 실탄 쌓은 코스닥사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시점에 실탄을 쌓는 기업들은 지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충격이 하반기까지 이어질 경우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 100곳 가운데 7곳은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19년 결산내역을 토대로 코스피·코스닥시장 상장기업의 현금소진위험을 분석한 결과 3.22%의 기업이 단기적인 자금압박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고 수출 감소와 내수 부진이 하반기까지 이어질 경우 현금소진위험은 7.23%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매출 75% 감소 기준으로 자동차 및 부품, 운송, 소재, 디스플레이, 음식료 등의 업종 순으로 현금소진위험 확률이 높은 것으로 예상했고, 의료 장비 및 서비스, 소프트웨어, 소비자 서비스, 반도체, 제약 및 바이오 업종 순으로 현금소진위험이 낮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코스닥 상장사들은 꾸준히 현금보유량을 늘리고 있다. 총자산 대비 20% 이상 순현금을 보유한 기업 비중은 1997년 1%가 안 됐으나, 2000년 25%까지 늘었고 작년에는 33%까지 확대됐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코스닥시장에 생각보다 자산 대비 20% 이상을 현금 실탄을 보유한 기업이 많다”며 “코로나19 사태로 지금과 같이 유형자산의 가격이 내려와 있는 상황에서는 실탄 보유 기업이 공격적으로 투자하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