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정치권의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가 활기를 띠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지난 8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국민의힘 연금개혁특위 박수영 위원장도 기금화 방안에 긍정적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기금형 도입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은 은행·증권·보험 등 민간 금융사의 반발을 넘어서는 게 숙제다.
퇴직연금은 계약형과 기금형으로 나뉜다. 계약형은 개인이 금융사와 직접 계약을 맺어 퇴직금을 굴린다. 기금형은 전문가 집단이 개인을 대신해서 돈을 굴린다. 국민연금공단 산하 기금운용본부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퇴직연금은 작년말 기준 382조원이 쌓였다. 하지만 예금 등 안전상품 위주로 운용하다 보니 수익률이 저조하다. 정치권은 퇴직연금을 국민연금 개혁과 연계해서 노후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이 논란을 낳고 있다. 한정애 의원의 법안엔 “국민연금공단을 100인 초과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의 사업자로 참여하게 한다”는 내용이 있다. 국민연금을 민간 금융사와 마찬가지로 퇴직연금 운용 ‘사업자’로 지정한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은 큰돈을 굴려본 경험이 풍부하다. 이를 활용해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고래’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시장에 뛰어들면 민간 자본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애써 확보한 수탁액이 국민연금으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말 기준 금융권역별 수탁액 점유율을 보면 은행이 51.8%로 가장 높고, 증권 등 금융투자가 22.7%, 생명보험이 20.5%로 그 뒤를 잇는다.
노후 소득보장은 통상 3층 연금체계로 이뤄진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을 바탕에 두고 사적연금인 기업연금(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그 위에 쌓는다는 개념이다. 이처럼 성격이 다른 국민연금 적립금과 퇴직연금 적립금이 한 곳에 몰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금형을 도입하는 목적이 수익률 향상이라면 이는 일반 금융사를 통해서도 달성할 수 있다. 퇴직연금을 기금화하더라도 적립금 운용은 민간 금융사를 우선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