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아내의 상태 변화는 영화가 끊긴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연속성도 개연성도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더 현실 같다. 식사 준비에서부터 아픈 아내의 목욕, 머리 빗기기까지 헌신적으로 아내를 돌보던 남편은 어느 날, 아내의 얼굴을 베개로 짓눌러 질식사 시키고 스스로도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인간이 극한의 한계 상황에 내몰렸을 때의 선택지에 대한 질문과 고민을, ‘위대한’ 내지는 ‘그 무엇도 이겨 낼 수 있는’ 등의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던진다. 그리고 그 극한의 한계 상황을 가족 내 ‘돌봄 노동’으로 설정하고 있다.
흔히 ‘간병살인’이라 불리는 이 모습은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서 그리 낯설지 않다. 100세 시대가 열리면서 덜 아픈 노인이 더 아픈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老老) 간병’의 시대도 함께 열려버렸다.
시작도 끝도 게다가 희망도 없는 이 간병노동의 비극적 최후에 관한 사건사고 보도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
지난 달만해도 서울 송파구 아파트에서 60대 치매 아내를 돌보던 79세 남편이 쓰러지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치매를 앓던 그 할머니는 남편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폭염 속에 가만히 누워 있다 탈진한 상태로 발견된 참사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명실상부 고령사회다. 현재 인구 7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다. 앞으로 7년 정도 더 지나면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가 될 것이다.
지난 2005년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간병 스트레스’로 인한 범죄를 따로 분류하고 있다. 2007~2014년 사이 8년간 매주 한 건 꼴로 간병살인이 발생했다. 우리 사회도 초고령 사회의 그늘이 서서히 드리우기 시작했지만, 현재로선 이 간병살인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마련 돼 있지 않다.
가족 간병인 4명 중 3명은 경제적 압박을 느낀다. 가족이 아프면 일단 2명 중 1명은 적금이나 보험을 깨고 있다. 다음 단계는 대출, 즉 빚으로 이어지고, 상당수는 신용등급 하락으로도 이어진다.
돈 문제 하나만으로도 그 압박감을 견뎌내는 것이 상상 이상일 텐데, 하루 종일 붙어서 돌보며 겪는 정신적, 신체적 고통까지 감안하면 가족을 돌보는 간병인 10명 중 3명이 간병 스트레스로 환자를 죽이거나 같이 죽으려고 생각한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놀랍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이 치매환자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이 ‘차라리 암이 나을 뻔 했다’라고도 할 만큼 돌봄 노동이 끔찍하다는 치매환자. 현재의 인구구조변화 추이로 보면 머지않아 6~7명 중 1명 정도로 치매환자는 늘어날 것이다. 경제적, 신체적, 정신적 한계의 시험에 들게 한다는 삶과 죽음 사이의 ‘돌봄 노동 외줄타기’. 이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 더 많은 국민들이, 그것도 곧 내 몰릴 수밖에 없음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수치다.
노노 간병을 포함한 가족 내 돌봄 노동을 더 이상 가족의 문제로 두어선 안 된다. 환자뿐만 아니라 이를 간병하는 가족의 건강 문제에도 적극적인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간병하는 가족이 제2, 제3의 환자가 되지 않도록 예방하지 않으면, 이는 결국 더 큰 사회적 비용 부담이란 악순환으로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치매 국가 책임제’뿐만 아니라, 가족 돌봄 관련 정책 전반이 가야 할 길이 바빠 보인다. 장기요양보험 서비스의 확대, 가정간호 서비스의 제도 개선은 물론이거니와 간병하는 가족을 위한 상담, 교육, 이들에게 숨 쉴 틈을 줄 여가지원 체계 마련 등 메워야 할 구멍이 많다. 간병 조력자의 유무에 따라 가족간병인의 환자 살해에 대한 생각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조사 결과는 현 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확대 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 ‘아무르(Amour)’의 현실판은 다른 결말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촘촘하고 더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이 마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