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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8시 30분 진행된 발인도 가족과 친인척, LG 계열사 경영진들만 참석해 차분한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 운구차에 실려 화장터로 옮겨진 고인의 유해는 한줌의 재가 돼 그가 아꼈던 화담숲 인근에 뿌려졌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 마지막 모습마저도 소탈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 장례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따뜻한 모습만큼 마지막도 소탈하게
누구보다 ‘작은 장례식’을 치렀지만, 그를 향한 추모 물결은 지금껏 치러진 어떤 장례보다 ‘큰 장례식’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애도받은 경영자가 있었던가. 생전 그와 인연이 깊은 유명 인사뿐 아니라, 이름 모를 네티즌들이 개인적인 경험담을 통해 구 회장의 선행, 마음 씀씀이를 전하면서 사람들을 더욱 숙연하게 만들고 있다.
‘작은 선행을 베푸는 소탈한 회장님’, ‘언제나 수행 비서 한사람만 데리고 다니던 경영자’ 등의 일화는 계속 나오고 있다. “부정한 방법으로 1등 할 거면 차라리 2등을 해라”, “기업은 국민 신뢰 없이는 영속할 수 없다”, “경영환경이 어렵다고 사람을 안 뽑거나 함부로 내보내서는 안된다” 등 그가 평소 당부했던 말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구 회장의 선행과 겸손했던 삶을 되새기기 위해 ‘선플(착한 댓글)’ 운동도 하고 있다.
구 회장 추모열기가 ‘신드롬’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요즘 현실과 무관치 않다. 한진그룹 등 일부 대기업 오너 일가의 갑질로 대기업 모두가 지탄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옆집 할아버지처럼 따뜻했던 구 회장의 모습이 가슴 속 깊은 곳에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반기업 정서 해결할 ‘정도경영’
구 회장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23년간 LG를 이끌면서 부르짖었던 ‘정도(正道) 경영’은 다시 재계에 울려퍼지고 있다. 경영만큼이나 공익활동을 중시하고 남모르게 선행을 실천했던 구 회장의 일대기는 기업에게 있어 이윤 추구보다 사회적 책임이 더 중요한 덕목일 수 있다는 교훈도 던져줬다. 어찌 보면 지금의 구본무 신드롬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反) 기업정서’를 해결할 단초다.
구 회장은 어린 시절에 대해 “할아버지는 사업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으로 현재 LG의 사업틀을 구축했고, 부친은 그 사업 기반을 굳게 다지셨다”고 회고한 적 있다. 어린 시절부터 조부인 구인회 LG창업회장과 부친인 구자경 LG 명예회장에게서 마음속 깊이 경영자의 마음가짐을 익힌 그다.
누구를 만나도 “LG 구본뭅니다”라고 말하는 겸손한 총수를 더는 볼 수 없지만, LG에는 그의 곁에서 경영을 배운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있다. ‘정도경영’의 완성. 언젠가 LG그룹 총수에 오를 구 상무가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 할 과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