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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1892년 북유럽 노르웨이의 오슬로. 동생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우정을 나누던 친구는 자살을 시도했다.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열네 살에 가까운 누이를 잃은 가난한 화가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검푸른 협만에 마치 화염 같은 핏빛구름이 걸려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혼자서 불안에 떨면서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를 느꼈다.”
서양미술사에서 세기말을 논할 때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그림이 바로 에드바르드 뭉크(1863~1944)의 ‘절규’(The Scream)다. 오슬로에서 성장기를 보낸 뭉크는 병약했던 심신의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남다른 예민함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18세기 말의 유럽 사회에서 ‘불안’을 감지했다. 뭉크는 1893년 민머리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비명을 지르는 정체불명의 인물을 통해 그 불안을 파격적으로 표현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뭉크의 ‘절규’는 이후 인간 이성의 불완전함과 인류의 비극을 예견했던 아이콘이 됐다. 자본주의가 세상을 점령하면서 물질주의로 인한 인간소외의 불안을 선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추앙받았다. 덕분에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전역에서 복제되고 다양한 콘텐츠에 영감을 주며 인류 문화유산으로서 영속성을 갖게 됐다.
노르웨이가 국가지정 문화재로 관리하는 뭉크의 작품들이 한국을 찾왔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에드바르드 뭉크-영혼의 시’를 통해서다. 뭉크는 훗날 자신의 대표작이 된 ‘절규’를 유화, 크레파스, 파스텔 등 재료를 달리해 여러 버전으로 남겼다. 서울에 오는 ‘절규’는 회화 버전이 아닌 1895년 제작된 석판화 버전이다. 회화 ‘절규’는 1994년과 2004년 도난당했다가 되찾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후 노르웨이 정부는 회화 ‘절규’의 해외 반출을 금하고 있다. 석판화 버전도 노르웨이 밖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온 석판화도 2006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후 8년 만의 외국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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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앞서 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욘 우베 스테이하우그 뭉크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회화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뭉크는 1894년 동판화를 시도한 이래 지속적으로 석판화를 제작하며 판화에서도 발군의 작품을 남겼다”며 “한국에 온 석판화 ‘절규’는 뭉크가 1895년 제작한 이후 자신을 홍보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활용해 남다른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뭉크의 작품 세계가 ‘절규’에만 한정되는 것을 경계했다. 스테이하우그 큐레이터는 “뭉크는 ‘절규’로 인해 외롭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화가의 모습으로 고착되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나 뭉크는 여든 살까지 살았으며 2만 8000여점을 남긴 매우 생산적인 화가이자 사업가적 마인드를 갖춘 화가로 평가받는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전시구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전시회 측은 뭉크의 작품 99점을 ‘뭉크 그 자신에 대하여’ ‘새로운 세상으로’ ‘삶’ ‘생명력’ ‘밤’ 등 5개의 주제로 나눠 선보였다. 삶과 자연에 대한 예찬이 감지되는 ‘태양’(1910∼13)과 ‘건초 만드는 사람’(1917) 등을 보면 뭉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깰 수 있다.
이외에도 ‘마돈나’(1895·1902)를 비롯해 ‘키스’(1897), ‘뱀파이어’(1916~18), ‘별이 빛나는 밤’(1922~24) 등 뭉크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대거 소개된다. 한가람미술관 관계자는 “그간 뭉크의 작품이 몇 개씩 전시된 경우는 있었지만 국내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회화와 석판화 외에도 뭉크가 남긴 이른바 ‘셀카’ 4점과 영사기를 통해 직접 촬영한 5분 가량의 영상도 흥미롭다.
참고로 뭉크가 노르웨이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노르웨이의 화폐 중 고액권인 1000크로네에 그려진 인물이 바로 뭉크다. 지난해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오슬로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에는 50만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노르웨이의 인구가 500만여명임을 감안할 때 국민 열 명 중 한 명이 전시를 본 셈이다. 10월 12일까지. 성인 1만 5000원, 청소년 1만 2000원, 어린이 1만원. 02-58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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