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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이미 다 꽂아놨대”…찝찝한 CIO 내정설

지영의 기자I 2024.05.24 05:20:00

군인·자영업자 노후자금 굴릴 기관들
자금운용 부문 수장 채용 중
시절이 어느 땐가...시장에 파다한 군인공제회·노란우산 ‘내정설’

[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우리 지 기자님, 그렇게 세상 물정을 몰라서 어떡해? 이미 다 꽂아놨지. 끝났어요”

때는 어느 저녁. 기자와 금융권 고위직들이 둘러앉은 테이블에서 나온 이야기다. 자본시장의 최상위 큰손들인 군인공제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노란우산공제 자산운용 최고책임자(CIO) 선발이 한창인 이때. 최종 후보군이 세 명씩 추려져 선발을 앞둔 두 기관을 두고 기이한 이야기가 나왔다. 후보자들이 결정권자(기관장)와 최종 면접을 보기도 전이건만, 이미 내정자가 있다는 것이다. 내정의 근거로 서울의 중심부가 된 특정 ‘동네’와 사적인 인맥, 정·재계 고위 인사들 이름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고, 제가 세상 물정을 모른다 치지요. 근데 정말로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농담처럼 웃어넘기며 달달한 소주잔을 비웠지만 뒷맛이 썼다. CIO는 농담으로라도 인맥과 로비로 결정되어선 안 될 자리기 때문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것은 나뿐이던가. 소주 맛이 썼던 건 그날만이 아니었다. CIO 선발전을 화두에 올릴 때마다 정보력이 있는 업계 고위 인사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내정’을 거론했다. 특히 두 기관 중 하나는 아주 틀림이 없단다.

이토록 정해졌다는데, 정작 중기중앙회장과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업계에 파다한 이 기가 막힌 내정설을 알고 있을지 의문이다.

정말로 업계의 시절 모를 농담에 그치길 바란다. 군인공제회 17조, 노란우산공제 27조. 각 기관 CIO가 투자를 총괄할 자금의 의미와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군인공제회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군인과 군무원의 피 같은 노후 자금이고, 노란우산공제는 대체로 국민연금도 받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이 기댈 마지막 보루다. 가뜩이나 불안이 산적한 시장에 두 기관 자금 운용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누가 질까. 낙하산은 또 어딘가로 도망갈 테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가입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업계에서 ‘내정’에 무게를 두는 데에도 그 나름의 이유는 있다. 이해관계에 맞는 인사를 소위 ‘꽂으려 드는’ 이들은 실제 적지 않을 테다. 자리의 의미와 무게는 뒷전에 두고 권한의 도구화, 장악과 남용을 원하는 인사들. 합격해 마땅할 전문가를 내리고 자격이 부족한 내정자를 내리꽂았을 때 생기는 폐해는 책임지지 않을 그들.

그러나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는 믿는다. 업계에서 뭐라든, 혹시나 전화통에 불이 나게 전화하는 이들이 뭐라든. 최종 인사권자인 기관장은 후보자의 역량과 전문성에 방점을 두고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두 기관장은 추상같은 공정이 사회의 합의이고 상식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까닭이다.

조만간 취재원들에게 핀잔을 주며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거 보세요. 아주 제대로 된 전문가가 뽑혔잖아. 우리 기관장님들이 그러실 리가 있겠습니까. 공정이 혀끝에서만 군림하던 시대는 갔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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