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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판단·운항하는 ‘바다 위 테슬라’…해운 산업 효율성↑

박순엽 기자I 2022.10.04 06:00:00

<미래기술25 - 자율운항 선박 ①>
스스로 주변 상황 인지·제어·운항하는 선박
운항 효율성 높이는 기술…안전사고도 줄여
규제 등 非기술적 문제 多…“정부 지원해야”

도로 위에 완전자율주행 버스가 다니고, 하늘 위에 드론 택시가 보이는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정부는 오는 2025년 운전자가 필요 없는 ‘완전자율주행’ 셔틀·버스를 선보이고, 2030년엔 자율주행 인프라 구축을 완료한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죠. 무인 드론의 배송도 2023년 상반기부터는 가능할 전망입니다. 이처럼 땅과 하늘에서 무인 자율주행 기술을 만날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바다에서도 곧 ‘자율운항 선박’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미국의 정보통신(IT) 기업인 IBM이 영국 해양 연구기관인 프로메어(Promare) 연구소와 추진한 프로젝트에 쓰인 자율운항 선박 ‘메이플라워’(Mayflower)호 (사진=IBM)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2022년 여름, 드넓게 펼쳐진 대서양 한가운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는 한 선박이 있었습니다. 그 앞엔 거대한 암초가 나타났죠. 만약 선박이 암초를 발견하지 못하고 부딪혔다면 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박 ‘메이플라워’(Mayflower)호는 안전하게 운항 경로를 변경했죠. 혹시 부딪혔다고 할지라도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애초에 이 선박에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메이플라워호엔 인간 승무원 없이 백만 개 이상의 이미지를 딥러닝(Deep learning)한 인공지능(AI) 선장이 있었습니다. 이 선박은 미국의 정보통신(IT) 기업인 IBM이 영국 해양 연구기관인 프로메어(Promare) 연구소와 추진한 프로젝트에 쓰인 ‘자율운항 선박’이었죠. 메이플라워호는 지난 17세기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한 선박의 이름을 딴 것처럼 대서양 횡단에 결국 성공했습니다. 이번엔 사람이 없었지만요.

자율운항 선박의 핵심 기술인 ‘지능항해시스템’ (사진=자율운항선박기술개발사업 통합사업단)
◇파도 높이·조수 간만의 차이도 스스로 감지

‘자율운항 선박’을 정의하는 표현은 기관마다 다릅니다. 무인 선박, 스마트 선박, 디지털 선박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리기도 하죠. 공통된 점을 꼽아보면 ‘선박 스스로 주변 상황을 인지하고 제어해 운항하는 기술’이란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정돕니다. 우리나라 해양수산부는 자율운항 선박을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센서 등을 융합, 지능·자율화된 시스템을 통해 선원의 의사결정을 지원·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고부가가치 선박’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현재 운항하는 선박에도 오토파일럿 등 자동제어 기능은 있습니다. 다만, 이 기능은 장애물이 전혀 없는 바다 한가운데에서만 쓰이죠. 실제 선박 운항은 배에 탄 선원들이 해야만 합니다. 바다는 육지처럼 길이 뚜렷하게 있지도 않고, 이정표도 없어 까다롭습니다. 자율운항 선박은 주변 선박의 위치와 운항 정보, 이동 상황 등과 함께 파도 높이, 조수 간만의 차이, 태풍과 같은 기상 환경도 함께 감지해 스스로 항로를 설정하고 항해할 필요가 있죠.

자율운항 선박이라고 해도 모두 이 정도 수준인 건 아닙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4단계 수준으로 나눠 자율운항 기술 수준을 정의하는데, 1단계는 선원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수준에 그칩니다. 2단계는 선원이 승선한 상태에서 원격 제어하는 수준, 3단계는 선원 없이 원격 제어하는 수준을 뜻하죠. 여기까진 부분 자율운항 기술이라고 부릅니다. 4단계에 이르러서야 선박 운영체제가 스스로 결정·운항하는, 완전 자율운항 기술이 적용된 선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MO 자율운항선박 단계별 정의 (표=자율운항선박기술개발사업 통합사업단)
◇‘효율성’ 증가가 개발 이유…사고 위험도 줄어

IMO가 지난 2018년 제99차 해사안전위원회에서 자율운항 선박 운용 시 영향을 미칠 해사 안전·보안 관련 14개 국제 협약 제정 착수에 합의한 이후, 조선·해운업계의 자율운항 선박을 향한 관심과 투자가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한국은 물론, 노르웨이·핀란드·미국·일본·중국·싱가포르 등 조선·해운 강국들을 중심으로 자율운항 선박 기술 개발과 시험 항해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시점도 이 시기죠.

조선·해운 강국들이 자율운항 선박에 관심을 두는 가장 큰 이유는 효율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운항에 인간이 관여하는 부분이 줄어들수록 효율은 오르기 마련입니다. 자율운항 선박은 기존 선박 대비 20% 이상의 운용비용 절감 효과를 낼 것이란 분석 결과도 있죠. 일반적으로 화물선 운용비용 중 연료비와 인건비가 50% 이상을 차지해, 자율운항 기술로 이를 줄일 수 있다면 해운 업계의 수익성 개선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완전 자율운항 기술이 실현된다면 선원 거주 공간과 통로, 안전 장비 등이 전혀 필요 없어 이를 제거한 공간에 화물을 더 실어 운항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선박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도 인간 탑승을 고려하지 않으면 항해에 최적화된 구조로 배를 만들어 연비를 높일 수도 있겠죠. 서비스 차별성이 낮고 경쟁이 치열해 수익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해운 산업이 한 층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란 관측도 나옵니다.

아울러 안전사고 우려도 줄어듭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조사 결과 국내 해양사고 발생 건수는 2001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20년엔 3156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해양 사고 대부분은 인적(人的)요인으로 발생하는데, 국내 해양 사고 원인도 사람 실수가 82%로 대다수를 차지했죠. 즉, 자율운항 선박을 사용하면 사고 위험 자체가 줄어든다는 말입니다. 또 사고가 났다고 해도 탑승한 사람이 없어 인명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도 있죠.

(표=자율운항선박개발사업 통합사업단)
◇규제·법률 등 非기술적 문제 산적…“정부 지원 필요”

아직 자율운항 선박이 갈 길은 멉니다. 기술이나 시장 문제 외에도 규제, 법률, 보험 등 아직 풀지 못한 비(非)기술적 문제가 많기 때문이죠. 자율주행 선박도 현재는 선박법, 선원법, 선박안전법 등 관련법 규제를 받습니다. 자율주행 선박은 사람이 승선하지 않을 수도 있어 이런 법규를 누가 책임지고 준수할지 기준이 모호해지기도 하죠. 자율주행차량이 상용화 과정에서 겪는 문제를 비슷하게 겪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업계에선 기술의 성숙도가 확보되고, 사회 인프라가 정비되면 자율운항 선박 도입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선박은 비교적 건조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수명주기도 길어 정부 정책 등이 동반되지 않으면 자율운항 시스템이 도입되는 데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며 “법과 제도를 빠르게 정비해 국내 업계가 자율운항 선박이라는 차세대 기술혁신에서 앞설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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