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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통지 없이 선고일 급박하게 변경…대법 “피고인 방어권 침해”

박정수 기자I 2023.07.26 06:00:00

“자동차 대신 팔아주겠다”…피해자 18명·4억5000만원 사기
다수 피해자 기망으로 죄책 무거워 각 징역 6월·2년 선고
2심서 항소 기각했으나 선고기일 통지 없이 변경
대법, 파기·환송…“피고인 방어권과 변호인 변호권 침해”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변론 종결 시 고지됐던 선고기일을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사전 통지 없이 급박하게 변경해 판결을 선고한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과 이에 관한 변호인의 변호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민유숙)는 사기와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각 징역 6월과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춘천지방법원에 환송한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자동차 대신 팔아주겠다는 명목 등으로 2019년 12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피해자 18명에게 4억5000만원 상당의 사기를 쳐 구속기소됐다.

일례로 A씨는 2019년 12월 차량 구입을 취소하려는 피해자 B씨에게 “차량 구입을 취소하려면 위약금 200만원이 필요하다. 사무실에 택배 지입 일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으니 1000만원의 보증금을 내면 내가 봉고 차량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주겠다. 보증금은 나중에 돌려주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A씨는 피해자로부터 받은 돈을 도박자금, 생활비, 개인 채무 변제 명목 등으로 소비할 생각이었을 뿐 당시 일정한 수입이 없어 피해자에게 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

1심에서는 피고인이 다수 피해자를 기망해 합계 약 4억5000만원 상당의 금원 내지 차량을 교부받아 편취하고 1450만원을 횡령한 것으로 범행내용에 비춰 죄책이 무거운 점을 고려해 각 징역 6월과 징역 2년을 선고했다.

2심에서도 피고인의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판결 선고 이후 형을 변경해야 할 정도로 특별한 사정변경을 찾아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1심에서 10명의 피해자를 비롯해 2심에 이르러 피해자 일부와 추가 합의를 했으나, 여전히 대부분 피해자의 피해가 회복되지 않아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하고 있는 점도 꼬집었다.

다만 2심에서 선고기일을 급박하게 변경했다. 2심은 2023년 3월 8일 변론을 종결하면서 피해자와의 합의서 등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 자료 제출을 위한 기간을 고려해 선고기일을 같은 해 4월 7일로 지정해 고지했다.

하지만 고지된 바와 달리 3월 24일 피고인에 대한 선고기일이 진행돼 교도소에 재감 중이던 피고인은 교도관의 지시에 따라 법정에 출석했고, 2심은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선고기일로 지정되지 않았던 일자에 판결선고 절차를 진행함으로써 공판기일의 지정에 관한 법령을 위반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양형 자료 제출 기회는 방어권 행사의 하나로 보호될 필요가 있고, 형사소송법 제383조에 의하면 10년 미만의 형이 선고된 사건에서는 양형이 부당하다는 주장은 적법한 상고이유가 될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는 원심판결의 선고기일이 양형에 관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시점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원심법원이 변론 종결 시 고지됐던 선고기일을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사전에 통지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급박하게 변경해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피고인의 방어권과 이에 관한 변호인의 변호권을 침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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