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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온 편지] 76. 21세기 귀족집단

한정선 기자I 2018.08.21 06:00:00
영국 상원 회의 모습(출처=영국 의회)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얼마 전 42세의 변호사이자 영국 데본 지역 출신으로 800년 된 성과 백작 작위를 물려받은 찰스 페레그린 코트네이가 영국 상원 의원으로 뽑혔습니다.

공석이었던 무소속 상원 1석을 두고 19명의 세습 귀족이 출사표를 던졌는데 31명의 무소속 상원 세습 귀족들이 투표해 데본 백작이 단 7표를 받고도 후보 가운데서는 가장 많은 표를 확보해 종신직인 상원직을 거머쥐었죠.

일각에서는 영국을 대표하는 입법 기관의 의원을 뽑는데 같은 정당 및 같은 귀족 그룹의 상원들만의 투표로 뽑는 것은 민주주의 시대에 역행하는 의원 선출법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습니다.

애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여동생 마가렛 공주의 아들이자 왕위 서열 19위인 스노든 백작도 상원에 입후보 신청을 했다가 영국 왕족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 등에 결국 철회했습니다.

민주주의 발상지인 영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왕족, 귀족의 전통이 아주 굳건한 곳이기도 합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직계 왕족은 정치적인 권한은 없지만 여전히 국가의 상징으로서 외교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와 부동산 등에서 나오는 수익과 국민의 세금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영국을 여행하는 한국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리는 곳 가운데 하나가 런던에 있는 여왕의 집무 공간인 버킹엄 궁전이기도 하죠.

귀족들의 특권은 영국 상원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영국은 의원내각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의회의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다수당에서 총리가 나오고, 총리는 대체로 다수당 출신의 의원들로 내각을 구성합니다. 따라서 내각 장관이 의회 의원을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죠.

영국 의회는 상원 및 하원 등 양원제로 운영되는데 있는데 상원은 귀족 출신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하원보다는 영향력이 덜 세고, 주로 명예직으로 여겨지죠.

상원의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이들은 성직자 귀족, 세속 귀족, 법률 귀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세속 귀족은 공작, 후작 등 작위가 후손에게 물려주는 세습 귀족과, 정치, 경제, 과학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으로 국가에 기여한 인물에 대해 총리 제청으로 여왕이 작위를 수여한 종신 귀족이 있습니다.

현재 800여명 가운데 90여명 정도가 세습 귀족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법률 귀족은 고등법원 판사 가운데 대법관으로 임명되면서 종신 귀족 작위까지 받은 인물입니다.

주로 작위가 없는 서민 출신인 하원이 선거구 투표로 선출되고 임기가 있는데 있는 반면 상원은 동료 상원들이 뽑고, 한번 상원으로 합류하면 사망하거나 스스로 사임하지 않는 한 종신직입니다.

상원 의원이 사망이나 사임 등으로 공석이 되면 상원 의원이 되고 싶은 귀족들은 상원 출사표를 던지고 같은 그룹의 귀족 상원 의원들이 투표해 신입 의원을 뽑죠. 주로 상원의 경우 하원처럼 보수가 나오지는 않고, 의회 회기 중 교통비 등 실비와 일당 등을 받습니다.

법률이 제정되려면 원칙적으로는 상하원 모두 통과해야 하지만 입법권에서 하원의 권한의 상원보다 월등합니다. 상원은 법안 수정 등의 역할에 한정돼 있고요.

일각에서는 상원이 민주주의 시대를 역행하는 산물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노동당 출신인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인 1990년대 후반부터는 상원 의원 수를 줄이고 같은 그룹의 상원 의원들의 투표로 진행되던 상원 의원 선출 방식을 직선제 등으로 개혁하려던 움직임이 거셌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국 선거개혁협회(ERS)는 현재의 상원 구성이 잉글랜드, 스코트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로 이뤄진 영국 전체를 대표하는데 무리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 사는 곳이 알려진 564명의 귀족의 54%가 런던을 중심으로 잉글랜드 동남부와 동부에 거주지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영국 인구의 11%가 사는 북서부 잉글랜드 출신의 상원 비중은 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아울러 전체 상원 가운데 235명이 정치인 출신이었으며 68명은 정치와 관련된 일의 종사자였고 13명은 정부기관 등에서 일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원이 다양한 백그라운드의 국민을 대표하는데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죠.

대런 휴즈 ERS 최고경영자는 “런던 출신들이 상원에 집중돼 있으면서 영국을 대표하는데 실패했다. 많은 정치인 출신들이 상원에 있는 것은 영국 국민과 상원의 괴리를 더욱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어 “상원은 웨스트민스터의 사적인 멤버 클럽이 돼 가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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