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칼협이 불편하다

김성곤 기자I 2023.06.21 06:00:00

[데스크칼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1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임금인상 쟁취, 공무원 생존권 보장, 공무원노동조합 총력투쟁 선포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세후 200도 안되는 박봉입니다 vs 누가 공무원 하라고 칼들고 협박했나 △17층 주주인데 지하실이네요 vs 누가 카카오 사라고 칼들고 협박했나 △대출에 마통·지인찬스까지 영끌했습니다 vs 누가 상투에 아파트 사라고 칼들고 협박했나….

여전히 ‘누칼협’ 전성시대다. 한때 게임 분야에서 유행하던 밈이 우리네 일상을 장악했다. 주요 커뮤니티 게시판이나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창에는 ‘누칼협’이라는 조롱이 넘쳐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만사, 모든 건 개인의 선택이다. 등 떠민 사람도 없다. 주식·코인·부동산 등 투자의 기본원칙은 본인책임이다. 직업의 세계에서도 누칼협의 파워는 막강하다. 언제부터인가 공무원 관련 기사 댓글은 언제나 누칼협이다. 교권추락에 시달리는 교사의 하소연도, 장교·부사관의 처우개선 주장에도 반박은 늘 누칼협이다.

과연 누칼협만이 정답일까. 세상사는 복잡다단하다. 수많은 이해충돌의 집합이다. 개인의 선택이 언제나 합리적일 순 없다. 그렇다한들 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제도 미비를 탓하자는 게 아니다. 견월망지(見月忘指)라고 했던가. 누칼협은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문제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은 시스템을 만든다. 역설적으로 사람이 만든 시스템은 오히려 사람을 지배한다. 수많은 톱니바퀴처럼 얽히고설킨 시스템의 개선은 난제다. 그래도 시스템을 개선하면 모두가 이익을 누린다. 반대로 시스템 개선을 포기하면 모든 책임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각자가 스스로 제 살 길을 찾는다는 의미다. 요즘 각자도생을 입에 올리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각자도생의 전제는 시스템의 부재 또는 오작동이다. 모두가 각자도생해야 한다면 야만의 시대와 다를 바 없다. 사실상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공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JMS의 성범죄에 치를 떨었다. 과연 여기에도 누칼협의 잣대를 들이밀 수 있을까. 사이비 이단 종교를 믿으라고 누가 칼들고 협박했나. 대단히 폭력적이다. 이런 식이라면 보이스피싱이나 로맨스스캠 피해자들에게도 누칼협 한마디면 끝이다.

누칼협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 손가락이 아닌 달을 직시해 보자. 누칼협을 뒤집어 보면 한국사회의 수많은 불편한 진실이 보인다. 취업난과 고물가에 시달리는 MZ세대, 동학개미의 눈물과 기울어진 운동장, 벼락거지와 부동산 빈부격차 등등. 하나같이 묵직한 고민을 안기는 이슈들이다. 공무원 처우가 개선되면 행정서비스가 향상된다. 혜택은 국민이다. 왜 과도한 물적분할의 위험성을 경고한 매도 리포트는 없었을까.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은 한국경제의 부동산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저출산 문제의 핵심인 결혼을 주저하게 만드는 과도한 집값이다. 하늘로 치솟은 주거비용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남길 수 없다.

누가 칼들고 협박했냐고 다그치지 말자. 조롱과 비아냥은 상처만 남는다.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 공동체에 속한 한 개인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다.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함께 풀어야 한다. 누칼협이 불편해야 작은 변화의 싹을 틔울 수 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