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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관악구 관악산 성주암에서 만난 재홍(64) 스님은 “우리의 삶은 욕심과 집착을 놓고 보면 모든 것이 기적이고 주변은 극락”이라고 말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일상의 소중함, 나아가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재홍스님은 “기적은 홀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이 같이 하기에 이뤄지는 것”이라며 “주변 모든 인연 덕분에 우리는 기적을 이루고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병도 많아져”
재홍스님은 한국불교태고종의 사찰인 성주암의 주지다. 스님에게도 코로나19 팬데믹은 커다란 사건이었다. 재홍스님은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병이 많이 나돌게 돼 있는데, 코로나19가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할지라도 도덕이 무너진다면 세상은 아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님은 “코로나19가 사라진 뒤에도 세상이 코로나 이전으로 정상화가 되기 위해서는 도덕성 회복처럼 심성이 착해질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종교에서는 여러 사상을 이야기한다. 대표적인 것이 절대자가 세상을 만들었다는 창조론, 모든 건 우연으로 이뤄진다는 우연론, 세상만사 필연적 법칙에 따른다는 숙명론 등이다. 재홍스님은 불교적 관점에서는 이 세 가지 모두 다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모두 ‘노력’의 중요성을 외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불교의 교리는 세상은 나 하나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 모두가 다 연계돼 있다는 것이에요. 일종의 인연론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게 노력입니다. 훈련받지 않은 코끼리는 무조건 앞만 보고 가듯, 정진과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불교에서 또 중요한 교리 중 하나는 바로 ‘즉심시불’,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이다. 재홍스님은 “즉심시불은 마음이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꽉 채우고 있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욕심만 추구하는 사람은 몸도 굳고 색깔도 탁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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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재홍스님은 “삶은 열심히 살되 욕심은 놓아야 한다”는 태도가 지금 사회에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성주암의 운영 철학에서도 드러난다. 성주암은 1986년 한국 불교 사찰 중 최초로 절의 재정상황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절의 재산은 신도들의 재산이지 스님들의 재산은 아니라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말하죠. 어떻게 욕심을 놓고 사느냐고요. 하지만 욕심만 부리면 될 일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욕심을 버리고 살라는 것이 나태하게 살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욕심은 버리면서 삶은 열심히 사는 것, 그렇게 정진해야 한다는 것이죠.”
세상이 나날이 갈등이 심해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매스미디어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나올 뿐, 갈등을 조절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세상은 욕하면서 닮는다고 하죠. 사람들이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 보면서도 즐기잖아요. 그렇게 세상이 ‘막장 드라마’를 닮아가는 거죠. 세상의 좋은 파장을 매스미디어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재홍스님은 “세상이 점점 각박해진다고 해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중 아홉은 자신과 남의 존귀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벌써 무너져 내렸겠죠. ‘역지사지’가 되지 않는 한 사람을 잘 보듬어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겁니다.”
◇재홍 스님은…
△1957년생 △동국대 불교학과 △1971년 혜담 스님 은사로 출가 △1998년 성주암 주지 스님 △경실련불교인연합회 부회장 △한국불교태고종 전 중앙종회의원·호법위원·총무부장 △태고종 현 고시위원장 △저서 ‘혜초대종사- 삶의 길 구도의 길’(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