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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대부분은 빛에 비춰보고 만져만 봐도 위조지폐인지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슈퍼노트(정밀하게 위조된 100달러 위조지폐) 같은 초정밀 위조 화폐는 구별이 어려우니 확대경과 영상 장비 사용해야 하는 거 잊지 마세요.”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8일 오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 지하 1층. ‘통제구역’이라고 적힌 출입문을 여니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은행 유니폼 대신 흰색 가운을 걸친 직원들이 영상분석장비와 확대경으로 위조화폐를 분류하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이곳은 국내 금융권에서는 유일하게 국가기관급 최첨단 위변조 영상분석 장비를 보유한 위변조대응센터다. 16명의 감별사가 1인 당 하루 평균 10만장의 화폐를 감별하는 곳이다.
◇ 하루 수십만장 감별…인쇄법·식별문자 확인 해야
감별실 안으로 들어서니 중형 화이트보드 크기 만한 진위감식기 4대와 확대경이 눈에 띄었다. 진위감식기는 진짜 지폐에 사용하는 특수 형광물질 잉크를 인식해 사용 가능한 정상 지폐와 사용 불가능한 지폐를 거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진위감식만으로 위조지폐를 찾아낼 수 없다. 기계가 사용 기한이 끝난 구권 지폐와 손상된 신권 지폐까지 비정상으로 분류해서다. 이 때문에 육안으로 수상한 지폐들을 찾아낸 뒤 확대경·영상분석장비 분석을 통해 위폐 여부를 최종 감별해야 한다.
첫 업무는 달러와 위안화, 원화가 섞인 지폐 수십장을 분류하는 일이었다.
위조지폐를 구별하는 첫 번째 단서는 소재다. 진짜 지폐는 구김·찢김 등 손상 방지를 위해 종이 대신 면과 마를 섞은 혼방 소재로 제작한다. 반면 위조지폐는 일반 목재 펄프 종이 소재로 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쇄기법도 다르다. 원진오 위변조대응센터 차장은 “진짜 지폐는 요·활판 인쇄 기법으로 제작해 화폐 표면이 거친데다 앞뒷면을 동시에 인쇄하기 때문에 빛에 비추면 앞뒷면 문양의 위치가 대칭을 이루고 있지만 위조지폐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폐 앞면의 그림 없는 부분을 빛에 비추어 보니 숨은 그림이 나타났다. 여기에 확대경을 통해 화폐마다 숨은 고유의 비표와 식별 문자를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지폐에 있는 홀로그램을 기울였을 때 그림이 번갈아 나타나는지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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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경과 모니터를 번갈아 확인하니 눈에 금세 피로해졌다.
원 차장은 “요령이 쌓이면 2~3분 안에 위폐 여부를 판별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다”면서도 “슈퍼노트와 같은 초정밀 위조지폐는 진짜 돈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초정밀 영상분석 장비’를 활용한 분석 작업에만 며칠이 걸린다”고 말했다.
위변조대응센터는 최근 슈퍼노트 신종 시리즈를 세계 최초로 발견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슈퍼노트는 그동안 미화 100달러 중 유통량이 많았던 1996·2001·2003년에 만든 지폐에서만 발견돼왔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한 슈퍼노트는 2006년도 발행분으로 이전까지 한국과 미국에 보고된 적이 없었다.
원 차장은 “당시 신종 슈퍼노트를 감별하기 위해 10여명이 매달려 3일 가까이 씨름했다”며 “최첨단 장비에 자체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위조지폐분석력을 갖춘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발견·신고된 위조지폐는 모두 912장으로 지난해 하반기(710장)보다 28.5% 증가했다. 2015년 상반기(2728장) 이후 2년 만에 오름세로 돌아섰다. 종류별로 △1만원권 643장 △5000원권 211장 △5만원권 50장 △1000원권 8장 순으로 많았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현행법상 원화 위조지폐를 제조 또는 유통하는 자는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 위조지폐임을 알면서도 사용한 사람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며 “지폐를 주고받을 때는 위조 여부를 확인하고 위조지폐를 발견하면 즉시 가까운 경찰서나 은행에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