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은의 지구 한바퀴]⑦다른 듯 닮은 `산티아고` 자유다

김재은 기자I 2015.06.20 05:00:00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전 세계에서 남북으로 가장 긴 나라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첫 인상은 그다지 ‘남미스럽지 않다’. 사실 남미에 처음 간 것이지만, 이미 학습된 남미의 모습은 아니었다. 산이 많은 것도, 이렇다 할 랜드마크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우리나라랑 더 닮았다는 느낌이다. 이국적이기보다 친숙하다.

우리는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근처 괜찮은 레스토랑을 물어 찾아갔다. 남미 대륙의 첫 날을 이대로 보낼 수 없기에 기내식도 먹었건만, 칠레 와인 한 병과 아이스 등심을 시켜놓고 자축했다. 레스토랑은 와인의 종류만 수십가지로 한 잔씩 따라 마실 수 있다.

칠레엔 교민이 2500명가량 산다는데, 그 레스토랑엔 10여명의 한국인 가족들이 와인을 마시며 저녁을 즐기고 있다. 그래서 더 한국이랑 비슷하다고 느꼈는지도….

와인 한 잔 걸치고는 편의점을 찾아 정처없이 걸었다. 근처에 뭔가 나오겠지 싶었는데,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한 두시간정도 헤매다 주유소 옆 편의점에서 물과 음료수 등을 사고 호텔로 돌아왔다.

한국과 다른 듯 닮은 칠레 산티아고. 뾰족한 산 풍경이 익숙하다. 사진=김재은 기자
다음날 아침. 날씨는 쨍하게 맑다. 우리가 간 11월말은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로 약간 더운 듯 했지만, 참을만 했다. 호텔에서 느즈막히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산티아고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정은 산타루시아 언덕과 성모상 2군데 뿐이다. 그냥 발길 닿는대로 남미를 즐기기로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우회전하는 차가 앞에 신호대기로 서 있는 차를 ‘쿵’ 들이받는 사고를 목격했다. 뒷차 운전자가 전방 주시를 안 한 것 같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다.

산티아고는 한국과 딱 12시간의 시차가 있는 지구 정반대편에 있다. 1541년 2월 스페인의 정복자 페드로 데 발디비아에 의해 산티아고 데 콤포 누에바 엑스트레마두라 도시로 건설됐다. 산티아고가 도시로 낙점된 이유는 온화한 기후와 중앙을 횡단하는 마포쵸 강이 방어선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칠레 전체 GDP의 45%가 산티아고에서 생산된다. 브라질 상파울루,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함께 남미의 3대 경제도시다.

산타루시아 언덕을 내려오면 만날 수 있는 terraza 분수. 사진=김재은 기자
산티아고의 중심인 광장으로 향했다. 이름하여 플라자 드 아르마스(Plaza de Armas). 산티아고 뿐 아니라 중남미에서 아르마스 광장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스페인이 점령했을 당시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대성당과 관공서 등을 세우고 도시를 확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페인에도 주요 도시마다 아르마스 광장 혹은 마요르 광장이 있는데 똑같은 뜻이라고 한다.

광장에 들어서니 멕시칸같은 느낌의 사람들이 많다. 머리는 검은색에 피부는 까무잡잡하고 키는 작은…. 사실 산티아고에 있는 동안 미인(美人)은 거의 보지 못했다.

산티아고 대성당도 둘러보며 인증샷을 남긴다. 아르마스 광장 주변을 구경하고 걸어서 15분 거리인 산타루시아 언덕으로 향했다.

69m(226피트) 높이의 산타루시아 언덕은 스페인 정복자 발디비아가 처음 망루로 사용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까지 망루로서의 모습을 유지하다 1872년 산티아고 시장이 공립공원으로 조성한 이후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고…. 언덕 꼭대기엔 이달고 성 요새가 자리한다.

산타루시아 언덕에 올라 그늘에서 마테차 한 잔을 마셨다. 으~~ 식혜도 아니고 내 취향은 아닌 지라 신랑이 거의 흡입했다. 언덕을 내려오는데 강렬한 햇살에 눈을 제대로 뜨기가 어렵다. ‘햇살이 작렬한다’는 표현은 이럴때 쓰는 것 같다. 그저 발길이 닿는대로 걸었다.

화사한 자카란다와 한 컷. 사진=신랑
가로수길보다 훨씬 한적하지만, 건물들은 훨씬 운치있는 괜찮은 지역이 나온다. 특히 보라색 꽃들을 한껏 머금은 가로수들은 그저 ‘남미스럽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가로수는 ‘자카란다(Jacaranda)’라는 이름의 아열대 식물이다. 늦봄에서 초여름까지 피는데 주로 남반구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산티아고 뿐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자카란다를 원없이 볼 수 있었다.

산타루시아 언덕 근처 노천 카페. 사진=카페 종업원
분위기 좋아 보이는 노천카페에 들어가 점심을 주문하고, 아스트랄 생맥주를 한 잔씩 마셨다. 맥주가 쌉쌀하니 특이한 맛이다. 맛있다. 남자 종업원이 참 친절하고 잘 생겼는데, 영어도 유창해 쏙 맘에 들었다. 낮술도 먹었겠다 노닥거리다 성모상을 보러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성모상이 위치한 산 크리스토발 언덕에선 산티아고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산타루시아 언덕에 비할 바가 아니다. 칠레 사람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한가보다.

성모상이 있는 산크리스토발 언덕에서 보이는 산타고니아 시내 풍경. 사진=김재은 기자
그런데 산타루시아 언덕에서부터 약간씩 핀트가 안 맞던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가 결국 성모상 기념사진 몇 장을 끝으로 사망했다. 더 이상 켜지지도 않는다. 아! 내일은 대망의 파타고니아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대로 카메라를 포기할 수는 없다.

성모상 앞에서 기념 촬영.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는 이 사진을 끝으로 사망했다. 사진=신랑
우리의 예정된 일정은 모두 소화를 한 지라 물어물어 산티아고에서 가장 큰 쇼핑몰을 찾았다. 소니 매장이 있길 바라며…. 다행히 소니매장에서 우리 미러리스에 맞는 50mm 단렌즈를 하나 구했다. 이미 디스플레이된 상품이지만 딱 한개밖에 없어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다. 이것도 감지덕지다. 렌즈를 사려면 여권이 필요하다고 해 호텔로 돌아와 여권을 챙기고는 렌즈 구입을 마쳤다. 아마 40만원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적지 않은 출혈이지만, 그래도 산티아고에서 망가진 게 다행이라고 위안해 본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파타고니아 어디쯤에서 카메라가 망가졌다면 그냥 포기했어야 했으므로….

쇼핑몰에서 만난 볶음밥과 쿵파오 치킨. 맛있게 잘 먹었다. 사진=김재은 기자
신혼여행 8일만에 처음으로 아시안음식을 먹었다. 중국식당에 가 쿵파오치킨과 맥주, 볶음밥과 딤섬을 시켜놓고 배불리 먹는다. 밥을 먹으니 좋다. 볶음밥은 양이 무지 많아 남은 것은 싸가지고 왔다. 내일은 드디어 파타고니아로 간다.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미대륙의 끝 푼타아레나스로 향한다.

산티아고에서의 웬지 모를 편안함도 이젠 끝이다. 파타고니아는 강한 바람과 변덕스런 날씨로 유명하니까 마음도 단단히 먹는다. 파타고니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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