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날 영풍이 제기한 ‘의안상정금지 등 가처분’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지난 17일 열렸던 첫 심문 기일에서 법원은 늦어도 21일 안에 가처분 판결을 내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고려아연의 임시 주주총회가 23일로 예정된 만큼, 그 전에 판결을 확정해 최대한 혼란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이번 가처분 소송은 고려아연 주주인 유미개발이 지난해 12월 10일 집중투표제 도입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집중투표제는 주총에서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주주에게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번 주총의 이사 후보 수는 총 21명(고려아연 7명·MBK 14명 추천)이다. 고려아연 주식 1주를 가진 주주에게는 총 21개의 의결권이 주어지며, 이를 소수에게 몰아주거나 분배해 투표할 수 있다. 특별관계인 53명을 보유한 최 회장 측에게 유리한 제도다.
|
만약 집중투표제가 가결된다면 최 회장 측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집중투표 도입 안건은 특별결의 사항으로 일반적인 표결과 다르게 주주별 의결권이 3%로 묶이는 ‘3%룰’로 진행된다. 현재 MBK·영풍 연합은 의결권 기준 46% 수준의 지분을 확보했지만, ‘3%룰’을 적용받으면 의결권은 24% 수준으로 파악된다. 반대로 고려아연 측의 일반 의결권은 20% 수준이지만, 3%룰에 따르면 56%(우호세력 포함) 까지 늘어난다. 집중투표제가 정관 변경 사안인 만큼 3분의 2 이상의 특별 결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 회장과 MBK·영풍 연합 모두 각각 약 10%포인트(p)의 추가 지원이 필요한 셈이다.
고려아연 측은 ‘소수주주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다. 최윤범 회장 역시 이번 집중투표제 도입 배경을 두고 “오직 주주만을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몇 년 전부터 집중투표제 도입 확대를 추진해온 캐스팅보트 국민연금은 고려아연 측 손을 들어줬다. 지분 4.51%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지난 17일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개최하고 집중투표제 도입에 찬성 결정을 내렸다. 국민연금의 판단이 기관 및 소수 투자자에 미치는 영향이 약 2~3%라고 가정한다면 고려아연은 집중투표제 안건 통과 9부능선은 넘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의 의견은 엇갈리는 상황이다. 글래스루이스는 “집중투표제 도입이 이사회 구성에서 소수 주주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더 대표성 있는 이사회 구성을 촉진할 것”이라며 찬성한 반면, ISS는 “일반적으로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에게 유리한 제도지만 이번 경우에는 영풍·MBK가 추진하는 이사회 개편이 약화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법원 판결을 가를 쟁점은 정관 변경과 동시에 이를 전제로 이사를 선임하는 것을 과연 허용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고려아연 측은 이미 정관 변경을 전제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조건부 주주제안 사례가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MBK·영풍은 ‘집중투표제’는 투표 방법의 하나로서, 주주제안과는 내용과 성격이 달라 다른 조건부 주주제안과 같이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정관변경이 선행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그 다음 주총에서 이를 기반으로 한 이사 선임이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