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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건설업계가 최근 날로 치솟는 공사비에 시름하고 있다. 전국 공사 현장 곳곳에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는 가운데 공사기간(공기)에 쫓겨 가까스로 완공한 일부 아파트 단지에선 입주와 동시에 대규모 하자가 발생하면서 국민 안전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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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복수의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앞선 A건설사의 부실시공 논란은 현재 국내 건설사들이 처한 악순환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대규모 하자가 빈번하게 발생한 데에는 일단 팬데믹 기간 원자재의 원활한 수급이 어려웠던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지만, 이에 앞서 빡빡한 공사비와 공기는 애당초 현실화해야 할 과제였다는 얘기다.
악순환의 고리를 살펴보면 ‘인건비·원자재 비용 상승’은 ‘공사비 증액 갈등’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공기 지연’에 따른 ‘공사비 증가’로 연결되는 구조다. 공사비를 최대한 줄이려면 매일 발생하는 막대한 인건비를 아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만큼 대다수 공사 현장이 공기를 줄이려는 노력이 수반된다.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할 공사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부실시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공사비의 현실화가 악순환을 끊는 첫 발걸음이지만 아파트를 거주보단 투자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선 쉽지 않은 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한 건축종합사무소 대표는 “설계를 맡기는 고객의 95%가 ‘싸게 잘 지어달라’라고 요청하지만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오래 거주할 마음이 아닌 투자의 입장으로 아파트에 접근하다 보니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부실시공 논란이 서울·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집중된 배경도 이 때문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서울·수도권의 경우 공사비가 오르더라도 아파트 가격은 더 상승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지만 지방은 그렇지 않다”며 지방 신축 아파트일수록 공사비 현실화가 더욱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공사비를 바라보는 수요자들의 인식 개선에 정부가 정책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주택의 건설 과정에서 공사비를 오르게 하는 요소에는 원자재비와 인건비, 물류비뿐 아니라 친환경 건축물 인증, 중대재해처벌법, 주 52시간 근무제 등 정부 정책적 비용도 원인”이라며 “주택을 바라보는 눈높이는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이를 위한 정책적 비용 증가에 대한 정부와 수요자의 인식은 낮아 공급자에만 책임을 지우는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최근 강남 3구 등 서울 상급지 정비사업에선 입찰에서부터 아예 공사비 기준을 높게 잡고 하이엔드 브랜드를 유치해 좋은 품질의 아파트를 지으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며 “공사 중간 갈등을 빚고 어차피 공사비를 올려줘야 한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공사비를 제대로 책정해 공사를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올해 초 도입한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를 기존 권고 수준에서 의무화로 강화하고 민간사업 공사비 산정 기준이 되는 공공사업 표준건축비 현실화 또한 공사비 현실화의 주요 방안으로 제시한다. 여기에 윤 수석연구원은 “최근 공사비 급상승의 주 요인인 인건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업종 특성을 고려한 주 52시간제의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