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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허니문’ 기간에는 이렇다 할 갈등이 없었다.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은 전성기를 이뤘고 중국 역시 한국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상생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갈등이 불거졌다. △2000년 마늘파동 △2002년 동북공정 △2005년 김치파동 △2012년 이어도(중국명 쑤옌자오·蘇巖礁) 갈등까지 고비마다 냉각이 이어졌다.
한중수교 후 처음 불거진 통상 분쟁은 마늘파동이었다. 당시 정부는 국내 마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산 마늘에 대해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했는데, 중국산 마늘에 대한 관세율은 종전 30%에서 315%로 10배 이상 폭등했다. 이에 중국은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을 중단하며 보복에 나섰고 한국은 결국 같은 해 마늘 관세율을 이전과 비슷한 30~50%로 낮추면서 분쟁이 마무리됐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한중관계도 변화 발전을 거듭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선 ‘21세기를 향한 협력 동반자 관계’로,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선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선 ‘전략적 협력을 지향하는 동반자 관계’로 각각 격상됐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에 참여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에 섰다. 이 때는 한중관계가 최고조에 달한 시점으로 평가된다. 2015년에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공식 발효됐다.
그러나 2016년 우리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중국이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등 전방위적 보복 조치를 단행하며 양국 관계는 급속히 악화됐다. 문재인 정부는 ‘3불’(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3각 군사동맹 불가) 입장을 밝혔으나, 중국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3불’에 더해 ‘1한’(이미 배치된 사드의 제한적 운용)까지 요구하는 등 여전히 상황은 풀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