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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의 맛있는 혁신]들꽃의 魂, 토종벌의 비상을 위해

최은영 기자I 2019.07.11 05:00:00
농촌진흥청이 전염병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은 토종꿀벌을 되살리기 위해 지난해 개발해 발표한 새 품종(사진=농진청)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 동명성왕 때 인도에서 한반도로 꿀벌을 들여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훨씬 전부터 이 땅에 토종꿀벌이 있었음에 분명하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땅에 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벌이 없으면 꽃에서 수분을 하기 어려워 식물이 멸종하고, 식물
이 멸종하면 동물도 살아남을 수 없다.

한편 바다를 건너온 서양꿀벌은 한 신부에 의해 1917년 한국에 상륙한다. 서양꿀벌과 우리 토종꿀벌은 같은 ‘벌’로 불리지만 실은 서로 교배가 되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먼 친척이다. 마치 소와 염소가 다른 만큼이나 서양꿀벌과 토종꿀벌은 서로 다르다. 일단 몸의 크기에 있어 서양꿀벌이 토종꿀벌보다 확연히 크고 꽃 속에 있는 꿀을 따오는 벌의 혀도 서양꿀벌이 길고 토종꿀벌은 짧다. 오랜 기간 개량되어 온 서양꿀벌은 꿀을 따오는 수밀(收蜜)량에 있어서도 토종꿀벌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서양꿀벌 한 마리가 한 번에 37mg을 따가지고 오는 것에 반해, 토종꿀벌은 16mg 정도 밖에 안 된다. 활동성 측면에서도 서양꿀벌이 더 적극적이라 결과적으로 꿀 생산성에서 큰 차이가 난다.

봄이 되면 꽃이 핀다. 꿀이 시중에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매해 5월부터 6월은 아카시아 꿀이 시중에 한참 풀린다. 꿀은 해당 꽃이 필 때에만 딸 수 있으니 그 때가 제철이다. 유채 꿀은 좀 더 빠른 3월부터가 제철이다. 재미있는 점은 ‘아카시아’ 꿀처럼 꽃 이름이 붙은 꿀은 토종꿀벌이 딴 꿀이 아닌 서양꿀벌이 딴 꿀이라는 사실이다. 왜일까? 음, 기본적으로 우리 토종꿀벌은 그 만큼 격렬하게 일을 하지 않는다.

서양꿀벌은 주로 이동식 벌통 안에서 기른다. 벌통의 주인은 개화시기를 기다린다. 그리하여 아카시아 꽃이 한반도의 남쪽 부산 기장에 피기 시작하면 벌통의 주인은 기장에 있는 아카시아 꽃 군락지 인근에 벌통을 가져다 놓는다. 그러면 벌통 속의 서양꿀벌은 아카시아 꽃으로 날아가서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한다. 열심히 따온 아카시아 꿀로 벌통이 가득 차면 벌통 주인은 벌통 속에 모인 아카시아 꿀을 수확하여 따로 보관한다. 그 사이 만개한 아카시아 군락지는 북으로 올라간다. 벌통 주인은 다시 벌통을 트럭에 싣고 아카시아 꽃을 쫓아 북으로 올라간다. 이들은 꽃을 쫓는 사람들이다.

이번엔 포항이다. 포항에서 아카시아 꽃이 만개하면 다시 그 아래에 벌통을 놓는다. 서양꿀벌은 다시 아카시아 꿀을 따서 모으기 시작한다. 금방 한 통이 차면 벌통 주인은 다시 꿀을 채집한다.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또 북으로 이동한다. 이런 식으로 휴전선 인근까지 꽃을 쫓아 북상한다. 그리고 새로운 꽃 소식이 남쪽에서 들리면 다시 벌통을 싣고 남쪽으로 이동한 후, 그 꽃의 개화에 맞추어 북으로, 또 북으로 이동한다. 유채 꿀, 아카시아 꿀, 밤 꿀 등은 이렇게 서양꿀벌을 활용한 ‘이동식 양봉’으로 생산이 된다.

반면에 토종꿀벌은 ‘고정식 양봉’을 한다. 주요 꽃 군락지 앞에 벌통을 세워 두어도 토종꿀벌은 그 꽃이 다 질 때까지 꿀 한통을 채우지 못한다. 그 정도로 생산성이 좋지 못하다. 그래서 토종꿀벌 벌통을 산속 깊은 곳에 세워두면 1년간 인근 산과 들에서 피고 지는 꽃들의 꿀을 조금씩 따서 모은다. 늦은 가을이면 겨우 꿀 한통을 채우고, 토종꿀벌 벌통 주인은 1년에 한번 꿀을 수확한다. 이 토종꿀은 좋게 말하면 야생꽃 꿀이지만, 흔히 잡화(雜花)꿀로 불린다.

꿀벌의 생태와 양봉 방식의 특성에 따라 서양꿀벌의 꿀은 꽃이 그 아이덴티티(정체성)가 된다. 유채 꿀에는 유채꽃의 향이 녹아 있고, 라벤더 꿀에는 마치 보랏빛 향이 나는 것만 같다. 특히 밤 꿀은 한국인이 매우 사랑하는 꿀이다. 그런데 이웃 일본인들은 밤 꿀의 그 독특한 향을 싫어해서 거의 채집하지 않는다고 한다. ‘라베이유’라는 일본의 멋진 꿀가게에 들어가면 전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꽃의 꿀들이 마치 보석처럼 매장에 펼쳐져 있다. 각각의 꿀은 꽃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멋과 맛을 자랑한다.

반면에 토종꿀은 특정한 꽃을 아이덴티티로 가지기 어렵다. 한 종류의 꽃에서 꿀을 채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종꿀에는 지역성이 존재한다. 움직이지 않는 고정 양봉을 하기 때문에 그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따라 365일 동안 피고 지는 지역의 다양한 들꽃의 혼이 담긴다. 그래서 지역별로 꿀의 맛과 멋이 오묘하게 달라진다. 경북 의성의 토종꿀에는 그 곳의 산과 들에 자생하고 있는 이름 모를 온갖 꽃의 생명력이 응축되어 있다. 충북 청주에 가면 또 그 곳만의 테루아르(Terroir)가 그 지역의 토종꿀에 담겨있다. 이런 측면에서 토종꿀은 마치 와인과 같다.

생산성의 차이로 우리 토종꿀벌을 포기하고 서양꿀벌로 양봉하는 곳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리고 2009년에 발병한 낭충봉아 부패병은 유독 우리 토종꿀벌에만 가혹했다. 한반도에 자생하던 토종꿀벌 전체 개체수의 90%가 이 병에 걸려 폐사함에 이르렀다. 토종꿀벌의 개체수가 급감한 지역에서는 들꽃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곤충생태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 토종꿀벌은 특유의 식성과 신체적 특성으로 우리나라 들녘에서 자생하는 들꽃의 꿀을 선호한다고 한다. 우리 전통의 고정식 양봉은 지역 식물 생태계의 근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최근 이 병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토종꿀벌들의 개체수가 조금씩 늘고 있다는 소문이 들녘에서 들려온다. 멸종하고 있는 우리 들꽃을 살리기 위해 소비자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토종꿀벌이 만들어 낸 토종꿀 중에서도 설탕을 먹이지 않고 들꽃의 꿀로 만든 토종꿀을 찾아서 구매하는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토종벌꿀을 구매할 수 있는 된 유통망이 아직 구축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문정훈의 맛있는 혁신’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함께해주신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달부터는 ‘임규태의 코덱스’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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