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기초연금 정책을 조금 수정하는 게 아니겠어요. 국가에서 하는 정책인데 따라야 하지요.”(정양수씨 75세)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이 대폭 수정된 채 발표될 예정이라는 보도가 신문 1면을 장식한 23일. 삼삼오오 노인들이 모여 앉아 가을 햇살을 쐬고 있던 서울 탑골공원을 찾았다. 이곳 노인들 사이에서는 “약속 위반”이라며 분개하는 목소리와 “불가피한 선택이니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박병완 할아버지(76)는 아내와 함께 받는 기초노령연금 15만원이 수입의 전부다. 이 때문에 박씨는 기초연금 20만원 지급 공약에 큰 기대를 가졌다고 했다. 그는 “기초연금 지급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며 “이제와서 공약을 수정하는 건 노인들을 우롱하고 사기치는 짓”이라고 분개했다.
경기도 안양에서 탑골공원까지 매일 원행을 한다는 김성호 할아버지(73)는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펼쳐 ‘기초연금 결국 대폭 후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여주며 어이없어 했다. 김씨는 “노인들이 언제 먼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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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규 할아버지(68)는 “뒤늦게 정책을 바꿔 좌절감을 주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박 대통령도 거짓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역대 대통령과 다를 바 없다”고 아쉬워했다.
반면 기초연금 축소 결정을 이해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황덕봉 할아버지(68)는 “처음부터 큰 기대도 안했다”며 “나라 살림의 형편대로 줘야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합친 약 60여만원으로 생활한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잘했기 때문에 딸도 무조건 찍었다”는 오병주 할아버지(85)는 “국가 재정이 부족한데 어떻게 다 줄 수 있겠냐”면서 “정부에서 연금을 지금보다 줄이지 않고 챙겨주려 하는 것만 해도 고맙다”고 말했다. 류경정 할아버지(80)는 “정책이란 원래 수정하면서 완성되는 것”이라며 “박근혜정부도 더 좋은 노인 정책을 만들기 위해 정책을 바꿔가며 실험하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처럼 엇갈린 반응은 노인단체들의 공식 입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한노인회는 ‘노인 하위 70~80%에 최대 20만원까지 차등 지급한다’는 기초연금 수정안에 일찌감치 찬성 입장을 천명했다. 하위 70%에 일률적으로 20만원을 지급할 것이 아니라 소득을 기준으로 10만원, 15만원, 20만원으로 차등화하자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55세 이상 노인들이 만든 노동조합인 노년유니온의 고현종 사무처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노후 빈곤율 최고, 노인 자살률 1위를 개선하기 위해서 정부는 목적세를 신설해서라도 공약대로 2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