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업은 문닫고 세수는 펑크...상속세의 덫 왜 놔두나

논설 위원I 2024.11.21 05:00:00
대주주가 현금 대신 주식으로 상속세를 낸 기업 10곳 중 4곳이 문을 닫았다는 정부 자료가 나왔다. 지분 대부분을 상속세로 정부에 낸 뒤 더 이상 기업을 꾸려갈 의지와 능력을 잃은 상속인이 적지 않다는 증거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받은 ‘물납증권 수탁현황’ 자료에 따르면 1997년부터 올해 9월까지 주식 물납으로 상속세를 낸 기업 311곳 중 휴·폐업 회사는 126곳으로 40.5%에 달했다. 문을 닫은 기업들은 대부분 물납 후 수년 안에 가업을 접었고 3개월 만에 폐업한 곳도 있었다.

주식 물납 제도는 최대 주주가 상속세를 낼 현금이 없을 때 주식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정부가 주식을 공개 매각해 현금으로 회수하게 함으로써 부당한 부의 대물림을 막고 세수 확보에 차질이 없도록 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제도의 취지와 현실은 큰 차이가 있다. 2011년 이후 올해 9월까지 기재부가 받은 비상장 주식 6조 2795억원 중 현금화한 금액은 6955억원(11%)에 그쳤다. 물납으로 낸 주식은 대부분 지분율이 50%를 넘지 않아 원매자를 찾기 힘든 데다 40%는 휴·폐업으로 휴지가 됐기 때문이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이 기업 의지를 꺾고 세수에도 구멍을 낸 격이다.

상속인의 능력 부족 등으로 문을 닫는 기업을 구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고 세율이 50%(최대 주주 할증 평가시 60%)에 달하는 징벌적 상속세가 지금처럼 존속하는 한 중견·중소기업들의 가업 포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타계 후 오너 일가가 내야 할 상속세가 무려 12조원대에 이르고, 세금 납부를 위해 은행 대출까지 받는 현실에서 가혹한 상속세는 백년 가업의 꿈을 발목 잡는 덫이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이 상속세 완화를 ‘부자감세’라며 막고 있지만 나라 밖 사정은 다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상속세가 있는 24개 국가의 평균 최고세율은 26%에 불과하다. 캐나다는 1972년 폐지했고 미국은 2012년 40%로 내렸다. 한국경제인협회의 국민 1000명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상속세율이 높다’는 답은 76.4%나 됐다. 정치권은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세법 개정에 협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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