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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기운의 서향·경사지는 사옥 비선호”
과거 한보건설은 은마아파트 상가를 본사로 썼다. 재계 순위 10위권 덩치가 무색하게 사옥에 인색했던 이유는 풍수에 심취한 정태수 회장이 고집해서다. “목수가 자기 집을 지으면 망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회사는 IMF를 거치며 쓰러졌으니 낭설이었을까. 벽산건설이 2014년 파산하자 ‘정태수의 저주’가 회자됐다. 1991년 벽산빌딩(게이트웨이 타워)을 사옥으로 지은 게 화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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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렬 더빌딩부동산중개법인 대표는 “서향으로 지은 빌딩은 해가 저무는 것처럼, 기운도 기운다는 게 풍수의 해석이라서 기업 사옥으로서 선호하는 대상은 아니다”며 “경사지에 있는 빌딩도 마찬가지 이유로 비선호 대상”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태평양 본사 이전은 ‘경사지 풍수’의 사례로 꼽힌다. 태평양은 1998~2022년 강남구 역삼동 한국타이어빌딩을 임차해 사옥으로 삼았다. 이곳은 선릉역에서 강남역으로 이어진 내리막길 중간에 평지로 위치한다. ‘흘러내리던 재물이 머무른 터’라고 한다. 공교롭게 태평양이 국내 로펌 순위 2위를 다투는 데까지 사세를 키운 시기는 ‘역삼동 시절’이다.
수위권 시행사의 대표는 “물이 재물을 불러온다는 것은 풍수의 정설”이라며 “한남동과 압구정동이 부촌인 이유는 전형적으로 물이 고이는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이 고이면 재물도 머문다”
한강은 동에서 서로 에스(S) 자로 흐르기 때문에 물이 천천히 흐르는(고이는) 지역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게 북쪽으로 용산구 한남동·이촌동이고 남쪽으로 강남구 압구정·청담동과 서초구 방배동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용산구는 백두대간에서 뻗어온 한북정맥의 기운을 담은 남산을 끼고 있어 배산임수 명당으로 꼽힌다.
다만 ‘물이 고이는’ 강남이 길지(吉地·좋은 일이 생기는 터)라는 데에 반대 시각도 있다. 청계천과 중랑천의 한강 합류지점 정남 쪽에 강남이 있기 때문이다. 시내를 관통한 오·폐수가 한강에 쏟아져 들어와 강남으로 고여 든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등에서 자산가들은 강남이 아닌 집터를 찾아 나선다.
앞서 시행사 대표는 “분당 남서울파크힐에 사는 재벌 회장이 지관을 대동하고 집터를 보러 왔다가 전형적인 ‘용의 머리’ 터라는 조언을 듣고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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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건설업계도 길지를 골라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여긴다. 사업 성패를 가르는 입지의 가치는 도로·교통, 상업·교육 등 주변 환경과 규제의 정도에 좌우된다. 현실적으로 사업성 있는 공터를 확보하기 어려운 것도 주된 이유다. 시행사 관계자는 “서울과 수도권, 광역시에 대지는 가격이 적정한지를 따지는 게 우선이지, 기운이 좋고 나쁜지를 잴 겨를이 없다”며 “외려 사업 상대방이 풍수상 역정보를 흘리면 사업을 그르칠 수 있어 경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