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2년 뒤에야 물가가 목표치에 갈 것이라는 전망인 만큼 유럽, 영국은 정책금리 인하 기대를 차단하기 위해 긴축 경계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내년 세 차례 금리 인하 전망을 제시했다. 주요국의 정책 스탠스 변화는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관통하는 키워드는 ‘굳이 물가를 빨리 잡을 필요가 없다’라는 것이다.
① ‘실질금리는 이미 플러스’, 경제 망치고 싶지 않아
물가상승률이 둔화되면서 주요국의 실질금리(정책금리에서 물가상승률 차감)는 플러스로 돌아섰다. 실질금리가 플러스라는 것은 경기를 위축시킬 정도로 금융여건이 긴축적이라는 얘기다.
미국은 정책금리가 5.25~5.5%인데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11월 3.1%이고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상승률이 4.0%라 실질금리는 플러스 1.5~2.4% 수준이다. 향후 1년 일반인 기대인플레이션율도 3.1%·3.4%로 실질금리는 플러스 상태로 전환됐다.
영국은 10월 근원물가(5.7%) 기준으로 보면 정책금리(5.25%)보다 높아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이지만 물가상승률은 4.6%로 실질금리 플러스 상태다. 유로 지역의 물가상승률은 11월 2.4%, 근원물가 3.6%로 정책금리(4.5%)보다 높아 실질금리 플러스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11월 물가상승률이 3.3%, 근원물가가 3.0%로 기준금리(3.5%)보다 낮아 실질금리가 0.2~0.5% 가량 플러스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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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이 12월 금리 점도표에서 내년 금리를 세 차례 인하할 수 있다고 예고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금리 점도표상 내년말 금리 전망 중간값이 4.6%로 9월(5.1%)보다 크게 낮아졌다.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는 만큼 금리를 내려 실질금리 수준을 적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물가를 잡기 위해 과도하게 실물 경제를 망칠 이유가 없다는 얘기이자 동시에 물가를 굳이 빠르게 잡을 필요성이 없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② 물가의 구조적 변화, 목표치 2%? 3%? 뭐가 맞나
주요국들의 물가 수준은 목표치(2%)와 비교해 대략 1%포인트 넘게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조기에 금리 인상을 멈추고 심지어 연준처럼 ‘긴축의 강도’를 유지하기 위해 금리 인하까지 시사하는 이유는 목표치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국들은 물가 목표치를 장기간 2%로 유지해왔는데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 변화, 탈세계화, 과도한 재정지출 등에 물가상승률이 구조적으로 높아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처럼 2%만 쫒아 물가를 잡다가는 오버킬(Overkill·과잉긴축)될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물가 목표치 2%가 옳은지, 3%가 옳은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활발하다. 영국 씽크탱크 리솔루션 재단은 영란은행이 물가 목표치를 3%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전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의 올리비에 블랑샤르 메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도 물가 목표치 3% 상향론자 중 한 명이다.
중앙은행들은 신뢰성을 고려해 물가가 목표치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골대’를 옮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중앙은행들은 말로는 물가가 목표치인 2%에 도달할 때까지 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하지만 물가가 빠르게 안정되는 것을 향해 움직이지는 않고 있다.
③ 전쟁 변수 어떻게 예측하나…물가 전망 불확실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째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등 중동 갈등이 부각되고 있다. 이는 현재 떨어지고 있는 국제유가가 언제 어떻게 상승 반전할지 불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2025년께 물가가 목표치 2%에 다다를 것이라고 보지만 한 치 앞의 일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2년 뒤 물가상황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함께 연초 금리 인상을 멈췄던 캐나다, 호주는 각각 6월, 5·6월 금리 인상을 했을 정도로 물가상승세가 다시 불안해지기도 했다. 연준의 내년 금리 인하 기대는 전 세계 시장금리를 낮춰 중앙은행 의도보다 물가 둔화 속도를 더디게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내년에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도 선거가 열린다. 선거용 각종 지원책들이 물가의 수요 측면을 자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질리안 테트 파이낸셜타임스(FT) 논설위원은 10월 칼럼을 통해 “중앙은행이 무엇을 할 것인가, 2% 목표를 달성할 만큼 금리를 올릴까, 3%가 새로운 2%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할까, 아니면 무엇이든 공급 측면 요인이 바뀌거나 본격적인 불황이 닥칠 때까지 목표를 암묵적으로 경시할까”라며 “내 생각은 세 번째다. 아마도 가장 덜 나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