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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듯 그림 감상하면 치유받죠"…컬렉터가 여는 '추모전'

이윤정 기자I 2023.03.21 05:30:00

''컬렉터 헌정 오세영 화백 추모전''
''심성의 기호'' ''축제'' 등 42점 선보여
"오세영 화백의 예술세계 느껴보길"
3월 27일까지 인사아트센터 1·2전시장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처음 오세영 화백의 작품을 보고 ‘명상하기 좋은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이 저를 위로해주는 느낌을 받았죠. 많은 사람이 오 화백의 그림을 보고 치유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추모전’을 열게 됐습니다.”

한 컬렉터가 작고한 화백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애틋한 추모 의지로 추모전을 열었다. 해외에서는 컬렉터가 작품 수집을 통해 전시회를 여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주인공은 컬렉터 박재석(57·힐링앤웰빙 부대표)씨다. 그는 30년간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며 10년 동안 사내 ‘마음건강 사무국’ 국장을 맡았다. 심리상담사 30여명과 함께 마음건강 관련 업무를 했던 그는 ‘마음을 치유해주는 그림’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오세영 화백(1939~2022)의 예술세계와 작품에 매료돼 그림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오는 3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 1·2전시장에서 열리는 ‘컬렉터 헌정 오세영 화백 추모전’은 박씨의 소장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최근 인사아트센터에서 만난 박씨는 “마음을 비우고 오 화백의 작품을 멍하니 바라보면 힐링이 되고 행복함이 느껴진다”며 “그냥 스치듯이 작품을 지나치지 말고 계속해서 보고 있으면 작가와 대화하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영 화백의 대표작 ‘심성의 기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에이앤씨미디어).
이번 전시에서는 오 화백의 대표작 ‘심성의 기호’와 ‘축제’ 연작 등 42점을 선보인다. 오 화백은 서울대 미대 회화과와 홍익대 대학원 공예과에서 수학하고 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주로 미국에서 활동한 재미화가다. 1979년 발표한 판화 ‘로봇’ 연작이 사회 비판 정신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당시 박정희 정권의 압박을 받았다. 이미 계획되어 있던 미국 순회전시 겸 ‘창작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숲속의 이야기’란 작품으로 제6회 영국 국제판화비엔날레 특별상(1979), 평론가 선정 미국 주재 해외작가 ‘10대 작가상’ 등 세계적인 미술상을 수상했다. 또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국립미술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열며 해외에서 한국 미술의 위상을 알렸다. 2000년 귀국 후에는 조용히 작품 제작에 집중하며 칩거하다시피 지냈다. 난청이 찾아오고 건강이 나빠지는 상황에서도 그림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았던 그는 지난해 급작스러운 사고사로 타계했다.

박씨의 마음을 빼앗은 첫 번째 그림은 ‘축제’(1989)라는 작품이었다. 박씨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그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는데 ‘축제’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며 “그 감정은 추상화의 선구자인 바실리 칸딘스키나 파울 클레의 그림을 봤을 때의 감동 이상이었다”고 회상했다.
오세영 화백의 ‘축제’(사진=에이앤씨미디어).
‘축제’를 구매한 후에도 그는 월급과 상여금 등을 차근차근 모아 오 화백의 그림을 사들였다. ‘축제’ 시리즈가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고 유쾌한 기분이 들게 한다면, ‘심성의 기호’는 내면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그림이라고 했다.

“생전 오 화백은 ‘심성의 기호’에 대해 태극기의 괘와 효를 재해석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마음 심(心)자를 해체한 후 괘를 재배치시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어떤 날은 노란 바탕에, 어떤 날은 금빛 바탕에 한점한점 마음의 색깔을 그려 넣은 것 같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정화됩니다.”

같은 제목의 그림들도 다른 색깔과 재료로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작품의 묘미다. 오 화백이 생전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재료로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을 만큼 원형의 형태가 오랫동안 보존되는 것도 장점이다. 박씨는 “다가오는 4월 12일은 오 화백의 탄생 85주년이 된다”며 “많은 분이 그의 예술세계를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함께 마음의 위안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오세영 화백의 ‘천지창조’(사진=에이앤씨미디어).
생전의 오세영 화백(사진=에이앤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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