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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은 지난 1일 부패전담사건 재판부를 대상으로 전산배당을 통해 지난달 신설된 형사13부에 이 부회장 항소심 사건을 배당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기록 검토를 토대로 조만간 첫 기일을 고지할 예정이다.
앞서 이 부회장 사건 1심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무죄를 주장했던 이 부회장 측은 지난달 28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다음 날 ‘형량이 너무 낮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에선 1심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공모 여부, △이 부회장의 부정한 청탁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대법원 판례는 대통령이 실제 돈을 받거나, 돈을 받는 데 공모했다면 대가성 여부과 관계없이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다. 행정수반인 대통령의 업무범위가 무한대에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특검은 삼성의 최씨 측에 대한 승마지원이 ‘이재용→박근혜’로 이어지는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삼성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관계를 입증할 증거가 없고, 최씨에게 돈이 건네지는 과정에 이 부회장이 관여한 적이 없다며 맞섰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특검의 논리를 받아들여 승마지원이 뇌물공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심은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업무수첩,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증언 등을 근거로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를 인정했다. 또 이 부회장이 삼성의 ‘사실상 총수’로서 최씨에게 돈이 건네는 과정을 주도했다고 봤다.
◇ ‘말 안해도 안다?’…묵시적 청탁 실체 두고 치열한 공방 예고
항소심에선 ‘부정한 청탁’의 실체를 두고도 특검과 삼성 측이 거센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1심은 청와대에서 작성한 ‘단독 면담 말씀자료’, 안종범 수첩 등을 근거로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개별 현안에 대한 청탁은 없었다면서도 ‘경영권 승계’라는 큰 틀의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 부회장과 관련된 뇌물공여 혐의 중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미르·K스포츠재단 부분은 제3자 뇌물죄 법리가 적용돼 ‘부정한 청탁’이 인정돼야 범죄가 성립한다.
판례는 부정한 청탁이 묵시적으로도 행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묵시적 청탁이 인정되기 위해선 공무원의 직무집행 내용과 제공되는 금품이 이에 대한 대가라는 점에 대해 양 측의 공통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경영권 승계를 서둘렀고 단독 면담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암묵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박 전 대통령도 재계 1위 그룹인 삼성의 승계 작업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삼성은 단독 면담 등에서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얘기는 전혀 없었고 실제 경영권 승계를 추진한 적도 없다고 맞섰다. 더욱이 영재센터나 재단 출연에 대해선 이 부회장은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 ‘한명숙 사건 유죄판결’ 정형식 부장판사 항소심 재판장
한편 ‘세기의 재판’ 2라운드를 심리할 서울고법 형사13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형사13부는 재판장인 정형식(사법연수원 17기) 부장판사와 강문경(28기) 고법판사·강완수(33기) 판사로 구성됐다.
정 부장판사는 1988년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평택지원장 등을 거쳐 2011년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됐다. 정 부장판사는 올해 2월부터 형사13부 신설 직전까지 재판을 담당하지 않고 사법연구 업무를 맡아왔다. 그는 사건 기록을 꼼꼼하게 보기로 법관 사이에선 정평이 나있다.
강문경 고법판사는 2002년 서울지법 북부지원(현 서울북부지법)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그는 2015년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된 후 2016년부터 서울고법 고법판사로 근무 중이다. 강완수 판사는 2004년 광주지법이 초임지로 서울북부지법을 거쳐 최근 서울고법에 합류했다.
재판장인 정 부장판사는 2013년 서울고법 형사6부 재판장 당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항소심 사건으로 세간의 이목을 끈 바 있다. 당시 형사6부는 9억여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부정수수죄)로 기소된 한 전 총리에게 1심의 무죄 판단을 뒤집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한 전 총리 사건의 쟁점은 금품 공여자인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혐의를 인정했던 검찰 진술을 법정에서 부인했다는 점이다. 1심은 한 전 대표의 법정 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도 검찰 진술을 번복한 점 등을 근거로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6부는 한 전 총리 동생이 전세금 잔금을 내면서 한 전 대표가 준 1억원짜리 수표를 썼고,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 비서를 통해 2억원을 돌려받는 점 등을 근거로 1심을 파기하고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도 2년여의 심리 끝에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소사실 중 2~3차 수수분 6억원에 대해선 유무죄 판단이 엇갈려 다수의견에 따라 유죄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1억원 수표 등이 포함된 1차분 3억원에 대해선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유죄로 판단했다. 한 전 총리는 이 판결로 복역 후 최근 출소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속적으로 이 판결에 대해 ‘잘못된 판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5년 당 대표 당시 대법원 판결에 대해 “법원이 잘못된 항소심 판결을 유지한 것은 정말 유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이 같은 시각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