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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혹한기 美·日 ‘합종연횡’ 시도…실익 있을까

이다원 기자I 2023.01.08 09:16:55

日 키옥시아·美 WDC M&A설 재점화
낸드 2-4위 사업자, 생존 위해 뭉친다
하지만 실제 성사 가능성은 매우 낮아
“메모리 중요성 대두…신중히 지켜봐야”
실익도 적어…생존 위한 움직임이란 해석

[이데일리 이다원 기자] 메모리 반도체 혹한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낸드 시장에서 다시금 일본 키옥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의 합병설이 제기됐다. 업계에서는 두 기업의 인수합병(M&A)이 사실상 성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움직임이 결국 생존을 위한 고민의 결과물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일본 미에현에 위치한 키옥시아(Kioxia)-웨스턴디지털 팹7 전경. (사진=키옥시아)
8일 관련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이 합병을 위한 논의를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4일(현지시각)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의 합병 논의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로 구체적인 수준은 아니며, 합의 없이 끝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일본 키옥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은 전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의 2·4위 사업자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키옥시아의 지난 3분기 낸드 시장 점유율은 20.6%, 웨스턴디지털은 12.6%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두 기업은 오래 전부터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어 왔다. 키옥시아의 전신인 도시바메모리 시절부터 두 기업은 합작법인(JV)을 세워 일본 미에현 요카이치시와 이와테현 기타카미시 등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키옥시아 신규 공장에도 꾸준한 투자를 이어가며 ‘러브콜’을 보내 왔다. 지난 2021년에도 한 차례 인수를 시도하기도 했다.

◇ 낸드 가격 폭락에 생존 고민 나선 기업들

두 기업의 M&A 논의가 다시 점화한 원인으로는 낸드 시장의 급격한 침체가 꼽힌다. 낸드플래시 시장은 D램 시장보다 더 깊은 침체에 빠져 있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1분기에도 낸드플래시 가격이 직전 분기 대비 10~15%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하반기 폭락에 이어 또 다시 하락세를 이어가는 것이다.

낸드를 중심으로 제조하는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재무 불안에 시달려 왔다. 두 기업의 3분기 매출액은 각각 전분기 대비 0.1%, 28.3% 감소했다. 키옥시아의 경우 팹 오염 이슈로 전분기 매출이 급락했던 것을 고려해도 낮은 수준이다.

이에 키옥시아는 지난해 10월부터 월 웨이퍼 투입량을 30% 줄이며 적극적인 감산에 나서기도 했다. 사실상 생존을 위한 결정인 셈이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2분기에도 낸드 평균판매가격(ASP) 추가 하락이 예상돼 수익성 악화가 지속할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낸드 기업들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지 않는다면 생존이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 ‘기간산업’ 메모리…각국 정부 “허락 못해” 가능성↑

하지만 M&A가 실제 성사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사실상 기간산업화한 만큼 국가 정부 차원의 합병 승인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낸드가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주요 메모리”라며 “최근 반도체 업계 M&A 분위기를 봤을 때 주변국 승인을 무난히 통과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당사자인 미국과 일본, 우리 정부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키옥시아 최대 주주는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으로 SK하이닉스가 포함돼 있다. 일본은 낸드 ‘원조’ 격인 키옥시아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며, 지난해 8월에도 웨스턴디지털을 포함한 미·일 컨소시엄의 인수 논의를 불허하는 등 방어 태세다. 미국 정부로서도 이미 키옥시아 대주주인 에 자국 기업이 포함된 만큼 굳이 모험을 걸 이유가 없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이 세계 최대 가전·IT(정보기술) 박람회 CES 2023 개막일인 5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 중앙홀의 SK그룹 통합전시관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도 이 문제에 대해 “국가 간의 이슈라 신중히 보고 있다”며 “당사 투자 건을 어떻게 볼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은 미국과 반도체 패권 경쟁이 대두한 시점부터 글로벌 반도체 기업 M&A를 불허하며 공급망 재편을 막아 왔다. 당장 퀄컴의 NXP 인수, 반도체 장비기업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의 고쿠사이일렉트릭 인수, 엔비디아의 ARM 인수 등 굵직한 딜에는 모두 반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실익 역시 크지 않다. 낸드플래시 사업 자체만 놓고 봤을 때 이익이 많이 남는 구조가 아닌 점이 근본적 문제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낸드는 과점화된다 해도 D램처럼 수급에 따라 가격을 적극적으로 인상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즉각적인 점유율 확대 외에는 투자 대비 성과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당장 두 기업이 JV를 운영하고 있어 사업을 합친다 해도 점유율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고도 볼 수 없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물리적 변화보다는 낸드 공급 진영의 경우의 수가 줄어드는 수준의 변화일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깊은 침체기에 빠진 낸드 시장을 중심으로 합종연횡 시도가 대두한 것을 두고 시장 재편이 일어날 가능성을 점치는 의견도 있다. 수익성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겨울’을 버티기 위해 반도체 기업들이 모험에 나섰단 것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두 기업의 합병 논의가 쭉 있어 왔지만 다시 대두했다는 건 그만큼 시장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두 기업의 나중 행보를 지켜봐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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