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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상륭 타계 '죽음의 한 연구' 끝내고 영면에 들다

김용운 기자I 2017.07.13 01:23:59

1일 캐나다에서 대장암으로 타계
1963년 ''아겔다마''로 데뷔
''죽음의 한 연구'' 통해 한국 관념소설의 최고봉 이뤄

지난 1일 타계한 박상륭 작가의 대표작 ‘죽음의 한 연구’를 원작으로 한 영화 ‘유리’(1996년 개봉)에서 주인공 유리 역을 맡은 박신양의 영화 속 한 장면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지난 1일 캐나다에서 타계한 소설가 박상륭 일반적인 독자보다 소설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로 유명했다. 1960년대 이후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맞붙던 문단에서 특유의 철학적이고 신화적인 세계관을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소설들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1940년 전북 장수의 부농 집안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박상륭은 중학교 시절 이미 500여편의 습작시를 쓸 정도로 문학적인 재능을 보였다. 1961년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전신인 서라벌예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해 김동리로부터 소설을 배웠고 동문수학한 소설가 이문구와 우정을 쌓았다.

1963년 ‘사상계’에 신약성서 속 유다를 주인공을 한 소설 ‘아겔다마’가 입상해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사상계’ 기자로 일했지만 1969년 국립의료원 간호사로 일하던 아내가 캐나다 밴쿠버로 취업해 이민을 떠났다. 박상륭은 이민 생활 초기 병원 시체실 청소부로 일하면서 소설 쓰기를 이어갔다.

박상륭 작가(사진=문학과지성사)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죽음의 한 연구’이다. 1975년 발표한 ‘죽음의 한 연구’는 당시 문학평론가 김현이 “내 좁은 안목으로는 70년대 초반에 씌어진 가장 뛰어난 소설이었을 뿐 아니라 ‘무정’ 이후에 씌어진 가장 좋은 소설 중 하나였다”고 격찬해 주목을 받았다.

한국 관념소설의 신기원을 이뤘다는 평을 들은 ‘죽음의 한 연구’는 주인공 유리가 40일간 고행을 하며 결국 죽음을 통해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기독교와 불교, 연금술과 설화 등 동서양을 아우르는 서사로 융합시켰다.

‘죽음의 한 연구’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96년 개봉한 양윤호 감독의 ‘유리’를 원작으로 했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에서 연기 공부를 마치고 온 신인배우였던 박신양이 주인공 유리로 분해 전라로 영종도 개펄을 뛰어다니며 찍은 영화로 화제가 됐다.

‘죽음의 한 연구’의 속편 격인 ‘칠조어론’도 박상륭 작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2002년 발표한 ‘칠조어론’은 불교와 기독교,밀교와 연금술, 신화와 설화,상징과 역사를 뒤범벅해 인간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비롯해 세속과 초월, 피안의 구조를 복잡하고도 난해하지만 완벽한 구조의 문장으로 펼쳐놨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상륭 작품의 특징으로는 문체를 꼽히고 한다. 판소리 사설처럼 자체적인 은율을 갖고 있으면서 구조적인 완결성과 단어의 적확성이 어우러진 특유의 만연체는 박상륭 소설의 호불호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생전 마지막 작품으로는 2013년 출간한 ‘잡설품’이다. ‘죽음의 한 연구’의 5부에 해당하며 ‘잡설’이란 고인이 평소 자신의 글을 일컫는 말로 경전과 소설 사이에 있는 글을 뜻한다. 고인은 ‘잡설품’에서 “작가는 중생들이 경전을 읽어 이해하기 쉽지 않으므로 그들의 귀에 들어갈 수 있는 호소력 있는 글로 잡설을 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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