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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5대 그룹 총수간 회동에 관심이 쏠린 것은 다름아닌 문 대통령 초청으로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함께여서다.
5대 그룹 총수와 무함마드 왕세자의 합동 간담회는 예정에 없던 행사였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재계에 따르면 사우디측의 요청으로 이뤄진 이날 회동에서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 부회장을 비롯한 5대 그룹 총수와 세계 경제 현안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국내 주요그룹의 투자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동이 주목을 받은 또 다른 이유는 회동 장소가 삼성그룹의 영빈관인 승지원이라는 점이다.
승지원은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이 살던 집을 개조한 곳으로 이건희 회장이 물려받으면서 선대 회장의 ‘뜻을 잇는다’는 의미로 승지원으로 이름을 붙였다. 이 회장은 옛 태평로와 서초사옥 집무실보다 주로 승지원을 이용해 이건희 회장 경영의 상징과 같았다.
이곳은 1층 한옥 한 채와 2층짜리 부속건물로 이뤄졌으며 외부인의 접근이 쉽지 않아 보안이 잘 이뤄지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회장은 승지원에서 계열사 사장단 회의와 삼성의 콘트롤타워(비서실→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 회의 등 그룹 내 중요한 의사결정을 이곳에서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삼성과 관련한 검찰 조사가 있을 때마다 승지원도 압수수색대상에 포함됐다.
삼성의 영빈관이라는 별칭답게 세계적인 기업의 CEO(최고경영자)와 해외 정상들도 승지원을 찾았다.
해외 정상 가운데에서는 지난 2012년 6월 모나코의 알베르2세 국왕이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승지원을 찾아 이 회장과 만찬을 했다. 이에 앞선 그해 3월에는 슈미트 팔 당시 헝가리 대통령도 승지원으로 초청해 만찬회동을 가졌다. 두 사람 모두 이 회장과 같이 IOC 위원으로 활동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IOC 위원으로 민간외교활동을 펼치는 데 승지원을 적극 활용한 셈이다.
글로벌 기업의 CEO들도 한국을 찾아 삼성과 사업현안을 나눌 때 단골로 방문하던 곳이 바로 승지원이다.
세계 최고 갑부로 이름을 알렸던 카를로스 슬림 멕시코 텔맥스텔레콤 대표도 2012년 방한시 승지원에서 이 회장과 만찬회동을 가졌다. 2013년에는 이 회장이 삼성과 40년 넘게 합작사업을 했던 미국 코닝의 제임스 호튼 명예회장 일행을 승지원으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하며 상호 협력증진방안을 논의했다.
이외에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 CEO, 제프리 이멜트 전 제너럴 일렉트릭 회장, 고바야시 요타로 전 후지제록스 회장 등도 이 회장과 만나 사업협력을 논의하던 곳이 승지원이다.
국내 재계인사들도 승지원을 찾아 경제현안들을 논의했다.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에는 이 회장과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승지원에서 만나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간의 빅딜을 논의했다. 재계 대표단체였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도 종종 승지원에서 열렸다.
2014년 5월 이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승지원에 관련한 소식은 뜸했다. 승지원이 이 회장의 집무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남인 이 부회장이 2014년 10월 외국의 손해보험사 대표들을 초청해 승지원에서 만찬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 승지원이 주목을 받았다. 당시 재계는 만찬 장소가 승지원이었다는 점에 대해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재계 관계자는 “무함마드 왕세자와 5대 그룹 총수와의 승지원 회동은 단순히 삼성의 사업적 이해관계를 넘어 국내 재계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는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