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엔진 스크루가 강바닥에 닿고 있어요. 모두 배 앞쪽으로 가세요.” 어촌계장 김한규씨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7~8m 길이 고깃배 위 승객 5명은 부리나케 뱃머리로 몸을 옮겼다. 보트 바닥이 끈적한 뻘 위를 쓸고 지나는 느낌이었다. 발목 잡힌 듯 미적거리던 고깃배는 김씨가 후미에서 엔진을 이리저리 움직인 뒤에야 다시 속도를 냈다.
지난달 26일 오전 10시30분쯤 경기도 고양·김포 인근 한강 하구 한가운데. 밀물을 맞아 누런 물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강 깊이는 의외로 낮았다. 장대로 찔러보니 1m 내외인 곳이 많았다. 김대순 김포시 건설교통국장은 “바닥 준설과 수중보 개선작업이 한시바삐 이뤄져야 한다”며 “하지만 개발엔 환경단체와의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남북정상회담에서도 개발이 논의된 한강하구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직접 배를 타고 일대를 둘러봤다. 한강하구는 민간인 출입통제 지역이라 이중 철책으로 경비가 삼엄했다. 취재진도 군 허가 문제 때문에 방문 두 번째 만에 출입할 수 있었다.
한강하구 지역 경비부대에 출입신고를 하고 육군본부 승인을 얻은 뒤, 군에서 파견된 안내장교 1명을 동승시킨 채 탐사를 진행했다. 초소와 철조망 사진촬영은 금지됐다. 생계를 위해 이곳을 드나드는 지역 어민들은 고정출입자로 분류돼 군에서 따로 관리한다. 어민들은 출입시마다 경비초소에서 신분을 확인 받아야 한다.
◆뱃바닥 닿을 정도의 강바닥
지난 8월 김문수 경기도지사 역시 같은 지역을 탐사하다가 배가 잠시 고립되는 일을 당했다. 동승했던 강경구 김포시장이 장대로 배를 밀어내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강 시장은 “퇴적으로 한강 바닥이 높아져 범람 위기를 늘 실감한다”고 말했다. 실제 홍수 때면 김포 지면 높이는 한강 수위보다 7~8m 정도 낮아진다. 수압 때문에 둑 너머 논으로 한강물이 스며나올 정도다. 게다가 김포대교 아래 콘크리트 고정 수중보 물 통로가 김포 쪽으로 뚫린 탓에 일산 쪽엔 토사가 쌓이고, 김포 쪽은 계속 침식이 일어나고 있다.
김포시는 한시바삐 대규모 준설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어부들 의견도 마찬가지. 김포시가 1992년부터 거의 매년 부분 준설을 하고 있지만 태부족이라는 평가다. 2005년 이 일대 모래 80만㎥를 퍼냈지만 1년 뒤 그만큼 다시 쌓였다고 한다. 김 국장은 “1년에 20㎝씩 강바닥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김포시는 김포대교 수중보로부터 24㎞ 아래 지역인 하성면 석탄리 포구 인근에 ‘가동 수중보’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 런던 템스강 하구의 ‘템스 베리어(Thames Barrier)’를 모델로 고려 중이다. 밀물 때엔 문을 닫아 바닷물을 막고, 썰물 때엔 문을 열어 강물을 내보내는 홍수조절장치다. 10.5m(높이)×61m(길이)의 중앙철제수문 4개 등 10개 수문으로 구성돼 있다.
◆골재와 관광자원 개발
북한 개풍군이 바로 강 건너로 보이는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 해병대 경비부대에서 강을 바라봤다. 1996년 북한 소가 떠내려 와 관심을 끌었던 유도(18만㎡) 뒤로 모래뻘이 섬 3~4배 규모로 조성돼 있었다. 임진강과 한강의 접점으로, 정전(停戰) 이후 한 번도 퍼내지 않았다는 모래뻘이다.
한강하구 준설 및 개발 주장에는 이 골재의 경제성도 거론된다. 통일부는 한강하구 골재 규모를 10억8000만㎥로 추정하고 있다. 값으로 따지면 10조원 정도로, 수도권에서 27년간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이라고 한다. 더 멀리 바다 쪽 물량까지 합하면 40조원 가치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4일 정상회담에선 한강하구 공동이용을 남북한이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로 골재 채취 판매, 수해예방, 군사적 긴장완화 등 다목적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그간 군사적 보장문제로 이행이 지연되다가 정상차원에서 합의함으로써 한결 사업추진이 빨라질 전망이다. 하구 준설 및 수중보 개선은 한강 관광자원 개발에도 유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현재 김포대교까지만 운행하는 한강 유람선이 파주 교하신도시, 김포 신도시 등을 지나 유도까지 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천연 생태 보고
배 옆으로 어른 팔뚝만한 참숭어 한 마리가 수면 50㎝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수천 마리 기러기 떼들이 인기척에 놀라 자유로 옆 장항습지에서 일제히 날아올랐다. 민물 가마우지들은 콘크리트 구조물에 앉아 물 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건설 중인 일산대교 아래 작은 섬에선 천연기념물인 저어새 6마리까지 발견됐다. 윤순영 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1500마리밖에 안 남은 저어새가 이곳에서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한강하구 생태가 매우 양호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현재 환경단체 등은 한강하구 생태 보호를 이유로 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작년 김포시 골재채취 작업도 환경부의 환경성 검토로 취소된 바 있다. 윤 이사장은 “자연을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계획이 짜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