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법조프리즘]정신질환자 범죄 줄이려면

송길호 기자I 2023.08.21 06:20:00
[박주희 법률사무소 제이 대표변호사]변호사로서 경험한 사건 중에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건은 80대 아버지가 조현병을 앓고 있던 딸을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80대 노인은 입원과 치료를 거부하며 갈수록 심해지는 딸의 병세를 보다 못해 다른 가족들을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딸의 목숨을 빼앗은 아버지의 죄 값은 용서받을 수 없겠지만 조현병 환자의 삶과 그를 간호하는 가족의 고통을 이해하게 됐던 사건이었다.

최근 분당 서현역에서 벌어진 흉기 난동 사건과 대전의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칼부림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며, 사회가 불안에 떨고 있다. 특히 사건의 범인들이 모두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관리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신건강복지법은 2017년 5월 대대적으로 개정이 이뤄졌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과 치료의 절차를 까다롭게 규정했는데,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입원을 통한 치료보다는 사회에서의 치료를 유도하겠다는 취지였다. 기존 법은 보호자 2명과 전문의 1명의 동의만 있으면 환자 본인의 동의 없이 강제입원이 가능했으나,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은 보호의무자 2인의 요청과 입원 등이 필요하다는 서로 다른 병원 소속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 이상의 일치된 소견이 있을 때에 강제입원 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신질환자 가족들과 정신의학계 전문의들은 이 조항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까다로운 법 규정 탓에 강제입원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고, 결국 적시에 입원과 치료가 이뤄지지 않아 오히려 정신질환자들을 위험한 상태로 방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9년 22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 난동 사건의 안인득 역시 입원 치료가 필요한 조현병 환자였으나 강제입원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치료를 받지 않다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유일한 법적 보호의무자인 어머니는 고령에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고, 그나마 병세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강제입원을 시키려 했던 형은 동거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호의무자에 해당하지 않아 그를 입원 시킬 수 없었다.

법리적으로만 따지면 당사자의 동의 없이 강제입원을 시키는 것은 개인의 자기결정권, 신체의 자유, 주거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또 기존에 강제입원 제도를 가족간 갈등에 악용하거나 전문의와 짜고 강제입원 시키는 등의 부작용도 있었기에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개정 법의 취지를 수긍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족의 고통이나 국민의 안전을 차치하고서라도 입원과 치료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것이 진정 환자의 인권을 위하는 것인지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발생하면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사회적 편견이 생겨버린다. 벌써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정신의학계 전문의들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율이 정상인에 의한 범죄율보다 높은 것도 아니고, 조현병 등은 치료만 꾸준히 하면 위험성은 낮아진다고 말한다. 치료를 통해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신질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해 범죄자로 전락하는 일들이 발생한다는 것인데, 통계자료만 봐도 알 수 있다. 2017년 법이 개정되기 전후 10년 동안 대학병원의 정신과 보호 병동은 18% 감소했고 정신질환자들의 치료 일수는 60일에서 41일로, 월평균 응급실 방문 횟수도 12회에서 6회로 크게 줄었다. 반면 2012년 전국 교정시설 내 정신질환자는 전체 수감자의 11.9%였는데, 2019년에는 19.1%로 크게 늘었다. 결국 정신질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해 범죄자로 전락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 정신의학과 의사는 ‘환자에게는 치료가 인권’이라고 말했다. 현실을 도외시한 법리는 허울에 불과하다. 정신질환자를 안전하게 치료해 사회에 복귀시키고, 사회적 편견 없이 ‘인권’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