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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으면 발목 잡힌다"…'뜨거운 감자'된 납품가연동제

경계영 기자I 2022.09.29 05:00:00

[납품단가 연동제의 덫]②
적용 범위부터 기준 가격·변동 폭까지 난제
국회 민생특위 끝나면 각 상임위서 논의 난망
개정안,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정부 결정 달려
의무화는 부담, 자율화는 실효성 문제돼 고민

[이데일리 경계영 강신우 함지현 이수빈 기자] “신이 와도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변동할 때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제품 단가에 이를 연동시키자는 ‘납품단가 연동제’ 취지 자체에 여야 모두 공감하지만 정작 이를 법제화하려 구체적 틀을 짜는 정부 부처에선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제도를 적용할 제품 대상과 범위부터 단가에 연동할 원재료 범위와 기준 가격까지 세세하게 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납품단가 연동제 시범 운영을 앞두고 소관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같이 만든 표준약정서엔 납품단가 연동 방식을 기업 간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기업의 결정 과정과 그 결과를 본 후 대안을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여야 납품단가연동제 추진 내용,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기준.(그래픽= 문승용 기자)
◇여야 의지 강하지만…각론 두고 이견

이번 정기국회에서 우선 처리하겠다는 민생 법안에 공통적으로 포함할 정도로 여야 모두 납품단가 연동제 처리 의지는 강하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은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갑’으로 힘이 센 대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을 법적으로 보호하고자 ‘약자와의 동행’ 1호 법안으로 추진하는 것”이라며 “큰 틀부터 세운 후 각론을 준비하면 된다”고 봤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2008년에 이어 물가 급등 문제가 불거져 추진하게 된 것”이라며 “일정 기간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때 납품대금을 자동 교섭할 수 있도록 하되 교섭을 자율에 맡기자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논의는 더디다. 국회 민생경제안정특별위원회(민생특위)에서 한 차례 논의했을 뿐, 여야는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다음달 말까지 한시 활동하는 민생특위가 해체되면 관련 법인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중기부 소관)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공정위 소관)은 정무위원회로 각각 이관돼 통합 논의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현재 상정돼있는 개정안도 각론에서 차이가 있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개정안을 통해 △원자재 가격 100분의 10 이상 상승 또는 하락 △최저임금 상승 또는 하락 등에 납품대금을 변동할 수 있도록 해 연동 대상을 임금까지 넓혔다.

이에 비해 더불어민주당은 원재료 가격이 100분의 3 이상 상승하면 납품대금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정태호·진선미 의원)을 내놨다. 원자잿값 변동 폭을 좁혔을 뿐 아니라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때만 납품대금에 연동 되도록 했다. 이성만 민주당 의원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개정안에서 주요 원재료 가격이 100분의 3 이상 하락할 때 납품대금을 조정하도록 했지만 위탁기업이 중소기업일 때만으로 한정지었다.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 제재하는 방식을 두고도 이견을 보인다. 과태료에 대해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과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납품대금 조정분의 2배를 기준으로, 이성만 의원은 납품대금 조정분의 3배를 기준으로 각각 잡았다.

하지만 개정안 상당수가 납품대금 관련 원자재 가격 변동분 산정 기준이나 방법 등 구체적 방식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여지를 남겼다. 결국 제도 성패는 세부 사항을 결정하는 정부에 달렸다는 의미다.

이영(앞줄 왼쪽 열한 번째)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KT우면연구센터에서 열린 ‘납품대금 연동제 자율추진 협약식’을 마치고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
◇자율 조정 맡기기엔 한계…결국 정부 결정 따라 성패 갈릴 듯

실무를 책임지는 중기부와 공정위도 미묘하게 입장 차를 보인다. 중기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민생특위가 국무조정실에 부처 의견을 조율해 종합된 입장을 제출할 것을 요청했지만 아직 공식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기부 관계자는 “현재 발의된 법안은 강제 의무화하면서 벌칙을 주는 방식이라 섣불리 법제화한다면 이제 불씨를 피운 납품대금 연동제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인센티브를 주면서 기업이 시범운영에 참여하도록 해 데이터를 쌓고 현장 데이터 기반의 법제화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자동차 부품만 해도 2만개가 넘는데 이들 납품단가를 하나하나 의무화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며 “자율적으로 업체 간 납품단가 연동 계약을 맺도록 하는 방향이 외려 더 효율적일 수 있고, 자율 계약이 실효성을 가지도록 정부가 뒷받침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기업 자율로 맡기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도급법상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도가 있지만 유명무실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지난 한 달 동안 조사한 ‘원자재 가격급등에 따른 원·수급사업자 납품단가 조정실태’ 결과, 수급사업자의 납품단가 조정요청에 원사업자의 48.8%는 협의를 개시하지 않거나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정협의를 실시해도 상승분이 일부라도 반영된 경우는 57.6%에 불과했다. 공정위는 지난 5월부터 ‘납품단가 조정대응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팀장 1명과 팀원 2명으로 구성돼 인력도 충분치 않다.

한 여당 의원은 “제도를 완벽하게 구축하지 않으면 되레 도입 후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에서 불만이 나와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대통령 공약사항이라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지만 고민이 크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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