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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짓고, 사람을 담는 승효상 이로재 건축사무소 대표. 그는 좋은 건축의 기준으로 터무니를 강조했다. 그의 말을 해석하면 대략 이렇다. 땅은 각각 무늬를 가지고 있다. 그게 터무니다. 터무니는 땅에 새겨진 일종의 기록이자, 나이테. 땅의 상태와 시간 그리고 자연과 사람 등 무수한 이야기가 이 터무니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건축가는 땅이 품은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땅이 원하는 건축물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축물은 사람을 담는 도구인 만큼, 그 도구가 소박해야 사람의 삶이 돋보인다. 그리고 살아갈 사람의 시간까지 품을 수 있어야 좋은 건축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승효상이 평생을 추구하고 있는 건축 철학인 ‘빈자의 미학’과 통하는 이야기다. 그가 들려주는 건축이야기를 따라 제주로 향한다.
◇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제주에는 내로라하는 대가들의 작품이 많다. 재일한국인 작가인 이타미 준과 안도 다다오가 대표적이다. 이타미 준은 제주에 방주교회, 포도호텔, 핀크스골프장과 클럽하우스 등을 남겼고, 안도 다다오는 제주 섭지코지에 유민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를 지었다. 모두 제주라는 주변 환경에 녹아든 건축물로, 제주의 삶을 공간 속에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 외에도 다양한 건축가의 작품들이 제주 곳곳에 여럿 있다. 멕시코의 거장인 레고레타가 일부 설계한 부영호텔, 말하는 건축가로 알려진 고 정기용의 ‘기적의 도서관’, 떠오르는 건축가인 조민석의 ‘오설록 티스톤’ 등도 제주를 대표하는 건축물의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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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중 한명으로 꼽힌다. 거장 김수근(1931~1986)의 문하에서 오랫동안 지냈고, 1989년 이로재를 설립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2002년 건축가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고,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와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등을 맡기도 했다.
이번 승효상과의 건축 여행은 사실 우연에서 시작됐다. 시작은 롯데 어트빌라스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승효상 프라이빗 건축투어’를 기획하면서부터. 이 소식을 접한 후 그와 만남을 제안했고, 그가 응답하면서 다른 이보다 하루 먼저 동행에 나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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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건축 거장들이 담아낸 제주의 숨결
“건축은 시대와 장소, 그리고 목적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가 첫 목적지로 서귀포 모슬포항 근처의 알뜨르비행장을 삼은 이유다. 알뜨르는 송악산과 단산, 모슬포와 산방산 아래쪽 뜰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 정뜨르비행장과 함께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군사시설이다. 중일전쟁 당시 남경을 폭격하기 위해 10년간 모슬포 지역의 주민들을 강제 징용해 만들었다.
알뜨르비행장은 당시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다. 비록 100년 가까이 시간은 흘렀지만, 이 넓은 들판에는 그때의 기억과 역사를 품은 20여 개의 격납고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당시를 증언하고 있다. 그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 땅이 진정 원하는 건축은 무엇일까를 함께 고민했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와 4·3 사건 등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이 넓은 들판에 거대한 격납고 시설이 그대로 방치돼 있습니다. 이 들판 뒤로는 산방산이 우뚝 솟아 있고, 앞으로는 넓디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와 풍경을 가진 땅이 바로 이곳입니다. 이 땅에 깊게 새겨진 속살과 자연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여느 대가의 멋진 미술작품을 뛰어넘는 가치를 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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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풍경 통과장치로서 존재해야
“제주는 한라산에서 바다까지 수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건물은 풍경의 통과 장치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건축물이 한라산과 바다를 잇는 통로를 막으면 안됩니다.”
승효상은 제주 땅에 자신만의 철학을 담은 두개의 건물을 건축했다. 서귀포의 롯데 아트빌라스와 추사관이다. 여기에 최근 또 하나의 건물까지 이름을 내걸었다. 제주 한림 금악오름 아래 지은 ‘백파진’(白坡進)이라는 건물이다.
이중 아트빌라스와 백파진은 풍경의 통과 장치로서 존재감이 돋보이는 건축이다. 롯데스카이힐제주 CC 뒤편 롯데리조트 단지 내 총 73채의 빌라가 들어서 있는 아트빌라스는 이름처럼 예술같은 숙소들이 모인 최고급 리조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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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파진은 이제 막 완공했다. 한라산과 금악오름, 그리고 바다 건너 비양도가 일직선으로 펼쳐지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성이시돌목장에서 생산한 우유를 가져다 가공하는 공장, 한라산과 금악오름, 그리고 비양도까지 이어지는 제주의 풍경이 어느 것 하나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들어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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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평 대지 위에 ‘빈자의 미학’을 채우다
“건축은 공공재입니다. 어떤 건축물이라도 공공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길 사이에 집이 있으면 길을 통해서 연결하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것에서 개인의 영역을 내주는게 중요합니다. 어느 한 건물이 두드러지지 않아야 합니다.”
서귀포 대정읍의 추사관은 승효상이 ‘빈자의 미학’을 가장 잘 구현한 건축물 중 하나다. 1618㎡(약 500평) 부지에 튀지 않게 들어서 있다. 앞과 뒤에 들어선 집과도 그 높이를 거의 같이하고 있고, 화려하지도 않다. 추사의 성품처럼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한 외관에 둥근 창을 냈다. 세한도의 초가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입구의 갈 지(之)자형 계단은 추사의 험난한 유배길 여정처럼 보인다. 외관은 소박하지만, 내부는 추사로 가득 채웠다. 추사의 다양한 전시품을 통해 추사의 굴곡진 삶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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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추사관은 그가 처음 생각했던 추사관과는 사뭇 다르다. 세간에는 승효상이 추사의 세한도(국보 180호)를 본떠 추사관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승효상은 추사의 삶을 담긴 했지만, 세한도를 모티브로 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추사관 앞의 소나무 두 그루도, 추사관의 둥근 창도, 전시관 내부 1층 추사의 흉상도, 그는 의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단지 주변의 풍경에 추사관을 맞췄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추사관이 있는 대정읍은 10평에서 20평 남짓한 낮은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마을이다. 승효상은 “마을의 낮은 집들과 어울리는 건축물을 지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가 평생을 추구해 온 ‘빈자의 미학’도 이와 마찬가지다. 조금 절제하면서 같이 어울려 살자는 것이 그의 생각. 어쩌면 추사가 추구한 예술 세계가 승효상의 건축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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