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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이 강요해 뇌물 공여” 이재용·신동빈 읍소전략 통해
지난 5일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강승준)는 신 회장에게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한 1심을 뒤집고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신 회장에 대해 경영비리 혐의 일부와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뇌물 공여 부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의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번 판결로 지난 2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신 회장은 234일 만에 석방됐다.
신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는데는 재판부가 K스포츠재단에 추가 지원한 70억원이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의한 ‘강요형 뇌물’이었다는 신 회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양형에 정상 참작했기 때문이다.
1·2심 모두 신 회장이 2016년 3월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에서 롯데월드타워면세점 특허 재취득과 관련해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점과 이 대가로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 지원한 점을 인정하며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뇌물 공여에 대한 ‘성격’에서는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대통령 요구를 이유로 70억원이라는 거액의 뇌물을 공여한 신 회장을 선처한다면 어떠한 기업이라도 뇌물공여라는 선택을 하고 싶은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먼저 뇌물을 요구했다고 해서 이를 건넨 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 2심은 “국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직접 요구했고 이에 불응할 경우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인 불이익을 받게 될 거란 두려움으로 돈을 지원한 측면이 있다”고 봤다.
항소심에서 재판부에 이런 판단을 내린 데에는 신 회장 측은 읍소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다.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신 회장 측은 1심과 달리 추가 지원한 70억원이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신 회장도 공판 과정에서 여러 차례 직접 발언권을 얻어 “정부의 지원 요청에 따라 한 것”이라며 “(현재 상황이) 납득돼지 않는다”고 재판부에 읍소했다. 지난 8월 22일 열린 결심공판에서도 신 회장은 “다시 한번 롯데를 경영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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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회장에 대한 항소심의 집행유예 판단 근거는 지난 2월 이재용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의 논리와 흡사하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는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최고 정치권력자인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 등을 겁박했고, 이 부회장 등은 정유라 승마 지원이 뇌물인 걸 알면서도 박 전 대통령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채 뇌물공여를 했다”고 판단했다.
두 총수가 같은 논리로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아냈지만 대법원 판단은 서로 달라질 수 있다.
우선 신 회장의 경우 항소심에서 주요 쟁점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또 각종 증거 능력에 대한 판단에서도 변수가 없어서 대법원의 판단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강요형 뇌물을 인정한 신 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이 부회장에겐 호재다. 박 전 대통령의 강요로 동계스포츠센터와 승마훈련비 등을 어쩔 수 없이 지원했다는 삼성측 주장을 대법원이 받아들이면 최소한 실형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안심할 수만은 없다. 삼성은 경영권 승계 작업에 대한 묵시적 청탁에 대해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어서다.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지난 8월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문석)는 박 전 대통령 항소심에서 “삼성 승계 작업에 대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인식을 공유했고 해당 현안이 우호적으로 조치됐다”며 묵시적 청탁을 인정했다. 만일 대법원이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면 이 부회장이 재수감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