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명사의 서가]②이근면 처장 "손무에게 배운 신상필벌로 공직사회 변화 이끌 것”

이지현 기자I 2016.03.02 06:00:00

이근면 인사혁신처장 곁에 두고 읽는 책 열국지
용인술의 핵심 가치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믿음

[이데일리 정태선 이지현 기자] 3시간에 걸친 이근면 인사혁신처장과의 인터뷰는 흥미진진했다. 40년 넘게 사람을 관찰해온 그의 눈은 인터뷰하는 기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눈썹 끝의 높고 낮음부터 신발 취향으로 포착한 성향 분석은 할 말을 잃게 했다. 준비했던 질문 대신 “셜록 홈즈 같다”라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는 껄껄 웃으며 지난 40년간 밥벌이 수단이었던 ‘사람의 마음관리’에 관한 이야기를 중국의 역사서인 열국지를 통해 풀어놨다.

◇열국지서 찾은 장점주의 인사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15일 국가인재원 도서관에서 ‘열국지’를 보고 있다.(사진=인사혁신처 제공)
이 처장이 곁에 두고 수시로 찾아 읽는 책 중 하나가 ‘동주 열국지’(東周 列國志)다. 주나라가 서융에 쫓겨 동쪽으로 옮긴 뒤 ‘동주’로 불리게 된 기원전(BC) 770년부터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하는 BC 221년까지 550년간의 중국 역사를 다룬 역사서다. 수많은 영웅과 사건, 나라, 인물들이 등장한다. 삼국지, 초한지조차 열국지에 서술된 장대한 역사 중 일부에 불과하다.

“중학교 때 가장 많이 책을 읽었습니다. 학교 수업도 안 들어가고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책만 읽다가 나오기도 했지요. 그때 삼국지, 초한지를 읽다 열국지에 손을 대게 됐지요.”

한번 손을 댄 책은 그날 다 읽어야 직성이 풀렸다. 잠을 줄여가며 책에 빠져 살았다. 열국지 15권을 모두 읽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관포지교(管鮑之交), 오월동주(吳越同舟), 화씨지벽(和氏之璧) 등 그냥 외우라면 어려울 고사성어를 열국지를 읽으며 자연스레 익혔다.

“복잡한 상황을 고사성어에 기대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고사성어를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게 됐지요. 그래서 열국지를 지금도 종종 꺼내보고 있습니다.”

그가 15권 분량의 열국지 중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맹상군의 3000식객’ 이야기다. 맹상군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 제나라의 재상으로 집에 찾아온 손님이면 미천한 신분과 얄팍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대해 그를 따르는 식객이 3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맹상군이 진나라 소왕에게 잡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3000명의 식객 중 개 짖는 소리를 잘하는 도둑과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의 활약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여기서 생긴 고사성어가 ‘계명구도’(鷄鳴狗盜)다.

“재주는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평균 이상의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책 면면에 흐르고 있는 것이지요. 저의 장점주의 인사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 사람이 낼 수 있는 성과는 뭘까를 생각하며 그 사람만의 장점과 재주를 보는 것이지요. 장점이 있는 사람을 귀하게 써서 성과를 낼 수 있게 해야 집단이 발전합니다.”

◇용인술의 기본은 ‘愛·信’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김정욱 기자)
그는 1976년부터 2011년까지 35년간 삼성에 몸담으며 인사분야 근무경력만 30년이 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인사전문가다. 2005년부터 4년간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인사팀장(전무)을 지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원흉 중 하나로 지목된 관피아(관료+마피아)를 근절을 목표로 인사혁신처를 출범하면서 그를 구원투수로 영입했다.

인사처 출범 이후 그는 ‘무늬만 개방형’이란 비판을 받아온 개방형 직위 제도를 뜯어 고쳐 민간 전문가만 지원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퇴직 공무원들의 재취업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잠시 쉬고 오는 것’으로 여겨졌던 공무원 교육을 ‘근무보다 빡세게’ 바꾸는 등 ‘이근면식 인사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공직사회를 기업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전국공무원노조는 그의 집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처장은 취임 이후 줄곧 푸른색 셔츠를 고수하면서 긍정의 에너지를 스스로 북돋고 있다.

그는 인사를 ‘사람의 마음관리’라고 정의한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없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없고 결국 효율적 인사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관찰을 통해 개개인의 장점을 찾아내고 그 장점이 좀 더 많이 발휘될 수 있는 방법을 항상 고민한다. 공직사회 일부에서는 그의 행보를 기행(奇行)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는 이런 시각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처장은 오늘도 신상필벌(信賞必罰)과 가치회복에 초점을 맞춘 공직사회 개혁을 가속하고 있다.

‘손자병법’을 쓴 병법가 손무가 오나라 왕 합려의 초빙을 받아 군사(軍師)로 임명된 뒤 오나라 병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소개된 일화는 ‘신상필벌’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손무는 협려의 시험에 응해 궁녀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면서 왕의 만류에도 불구, 군율을 우습게 여긴 우두머리 궁녀 두 명을 참수했다. 이후 궁녀들은 흐트러짐 없이 훈련에 임했고 이를 본 협려는 손무에게 오나라의 병권을 맡겼다.

“단기적 상벌이 조직을 움직인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하고 싶어하고 잘 보이고 싶어합니다. 이걸 어떻게 발현시키느냐가 매니지먼트인데 상벌로 다스리는 것은 단기적인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 ‘공무원의 3대 비위’(성·금품·음주운전) 징계기준을 강화했다. 아울러 적극행정은 표창하고 소극행정은 처벌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를 통해 ‘복지부동’, ‘무사안일’로 대표되는 공직사회의 경직된 문화를 바꿔나가겠다는 복안이다. 공무원들의 철밥통을 깨고 공무원을 국민들이 기대하는 ‘공복’으로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함께 공직 가치 회복을 위한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공무원상’을 제정해 100만 공무원 중 100명의 우수 공무원을 선정해 공직사회의 귀감이 되도록 하고 있다. 35년만에 공무원 헌장도 바꿨다. 매일 아침마다 방송을 통해 공무원 헌장을 낭독하며 서랍 속에 처박힌 공직 입문 당시 가졌던 초심을 회복하길 기대하고 있다.

“저는 믿습니다. 시작하는 게 어렵지 시작하면 출발이 반이라는 것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씀은 욥기 8장 7절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노력한다면 분명히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아질 겁니다.”

◇이근면 처장은

1952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중동고를 거쳐 1974년 성균관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1976년 삼성그룹에 입사한 뒤 삼성코닝·삼성SDS·삼성전자 등에서 인사 분야를 담당했다. 인사분야 전문가로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스 후즈 후’ 2011년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아주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2014년 11월 신설된 인사혁신처 초대 처장으로 취임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