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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금수저 쥘 기회 보장하는 나라가 '헬조선'인가”

전재욱 기자I 2015.10.19 05:00:00

최송화 첫 사법정책연구원장 인터뷰
74세 최고령 사법부 기관장..조직은 출범 2년 최연소
재외국민 가족관련등록 사무소 개설·디스커버리제도 도입
"대법원 정책역할 하도록 상고법원 도입해야"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최송화 사법정책연구원장이 14일 원장실에서 본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외국에 나간 우리 국민이 가족관계등록(사망·출생·혼인·이혼)을 신고하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재외공관과 외교부를 거친 신청서를 일선에서 처리하기까지 길게는 석 달이 걸렸다. 지난 7월 재외국민 가족관계등록 사무소가 문을 열면서 이런 불편이 사라졌다. 이제 전자 신고서를 내면 수리까지 빠르면 3일이면 된다.

사실심(1·2심) 강화방안으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소 제기 전 증거조사절차) 도입이 논의 중이다. 재판 시작 전에 소송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골자다. 법원이 원고의 요청으로 피고에게 증거 제출을 명령할 수 있다. 쌍방 증거가 명확해지면 소송 없이 분쟁이 해결되기도 한다. 대법원은 제도 도입을 위한 법률 개정을 추진 중이다.

사법정책연구원이 바꿔놓은 사법부 풍경이다. ‘대법원 싱크탱크’로 출범한 지 2년째. 사법부에서 가장 젊은 조직이 이룬 성과다. 연구원을 이끄는 수장은 사법부 기관장 가운데 최고령인 최송화(74) 초대 원장이다.

최 원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사법부의 변화는 법률문화의 변화이고, 이러한 변화가 세계를 선도하는 기준이 되도록 연구원이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14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정책연구원 원장실에서 진행했다.

최 원장은 사법정책 변화의 최대 현안으로 상고법원 도입을 꼽았다. 대법원이 정책법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적 고려에서다. 지난해 대법관 한 명이 처리한 사건은 3178건이다. 대법관들은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소송(정책적 사건)을 고심하는 한편으로 무전취식으로 벌금 10만 원을 받은 사건(일반 상고사건)을 함께 처리해야 한다. 대법관의 과도한 업무부담 탓에 전원합의체 사건은 3년 연속 내리막길이다. (2012년-28건, 2013년-22건, 2014년-14건)

“사회구성원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풀어내려면 정책법원으로 대법원이 역할이 중요하지만 처리할 사건 수가 너무 많다. 권리구제 기능을 상고법원이 담당하고 대법원은 주요 사건에 집중해 정책법원 역할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바람직하다.”

상고법원 도입의 전제조건은 사실심 충실화다. 대법관이 재판하지 않아도 판결이 믿을만하다는 공감이 있어야 한다. 연구원 연구과제는 사실심 강화와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도 마찬가지다. 연구원에는 미래사법정책센터, 통합사법센터, 통일사법센터, 해외사법센터, 법교육센터가 있다. 법관 10명(고법부장 1명 포함)을 비롯해 박사급 연구위원 8명이 각기 분야에서 사법신뢰 증진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뛴다.

개중에서 통일사법센터가 눈에 띈다. 최 원장은 “남북한 통일의 마지막은 법률적 갈등의 해소다. 재판부터 법조인력 양성, 재산권 다툼, 가족관계 문제 등을 종국적으로 해결할 곳은 법원”이라고 했다. 토지 등기와 지식재산권 등에 얽힌 남북 분쟁 해소 방안을 연구 중이다. 가시적 성과로 ‘탈북주민 사법지원 방안’ 연구보고서가 이달 나온다.

이렇게 쌓인 연구보고서가 작년 1월 개원 이후 이달까지 19건이다. 올해는 보고서 15건(발간예정 3건 포함)이 나왔다. 작년보다 성과가 낫다. 최 원장은 “연구결과는 중장기적 정책개선 자료로 활용하지만, 정책 개선 결과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외국민 가족관계등록이 간편해진 것은 연구원의 지적이 반영된 결과다. 현재 연구원은 내년도 연구과제 공모작 약 80건을 두고 선별 중이다.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연구과제 모두를 다루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해 출범 첫해 연구에 필요한 업무체계를 갖추려고 노력했다. 이제 갈수록 연구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 인력과 예산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일흔이 넘은 백발노장은 하루하루 빈틈없는 일정을 소화한다. 최 원장은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연구원 개원 1주년 기념 토론회의 내용을 귀담아 내년도 연구과제를 구상할 계획이다.

끝으로 최 원장은 ‘헬조선’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헌법적 가치를 강조한다. “가진 자와 없는 자 모두에게 행복추구권을 주는 헌법을 가진 대한민국이다. ‘흙수저’를 가진 사람도 자기만의 ‘금수저’를 쥘 기회를 헌법이 보장한다. 청년들이 말하는 ‘헬조선’은 이런 나라다.”

▲최송화 원장은 누구

최송화 원장은 일제 치하인 1941년 경북 김천에서 났다. 광복과 6·25전쟁을 거쳤다. 경기고와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행정법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부터 서울대 법대 교수로 일하다가 1996년 대학 부총장에 올랐다. 한국공법학회 회장을 거쳤고 지금도 고문으로 활동한다. 2014년 1월 초대 사법정책연구원장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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