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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에서는 전직 대법원장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두고 일대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명재권(52·27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양 전 원장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이날 오전 1시 57분쯤 영장을 발부했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던 양 전 원장은 법원 결정으로 미결수 신분으로 수감됐다.
명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11~15일 양 전 원장에 대해 3차례의 피의자 소환조사를 한 뒤 18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공무상 기밀누설 등 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그가 다수의 재판개입과 법관 블랙리스트 등 사법농단을 단순히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게 아니라 직접 수행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양 전 원장이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개입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및 검찰 내부정보 유출 △법관 사찰 및 인사 불이익 △공보관실 운영비로 비자금 3억5000만원 조성 등에 직접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또 양 전 원장이 박병대(62)·고영한(64)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및 임종헌(60·구속기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함께 공모 관계라고 판단한 상태다.
법원은 영장심사에서 이러한 검찰의 주장을 사실상 대부분 받아들였다. 양 전 원장이 사법농단 사태의 최고 책임자로서 일부 재판개입에 직접 관여했다는 혐의를 인정한 것이다.
법원은 반면 ‘실무 하급자가 알아서 했다’거나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양 전 원장 측 주장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직권남용 등 핵심 혐의 성립을 인정받으면서 향후 정식 재판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게 됐다.
반면 박병대 전 대법관은 이번에도 구속을 면했다.
박 전 대법관 영장심사를 한 서울중앙지법 허경호(45·27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기각 결정을 내렸다.
허 부장판사는 “종전 영장청구 기각 후 수사내용까지 고려해도 주요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추가된 피의사실 일부는 범죄성립 여부에 의문이 있다”고 밝혔다. 허 부장판사는 “현재까지의 수사경과 등에 비춰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2월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장으로 재직하며 강제징용 소송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등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법관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혐의도 있다.
검찰은 지난달 박 전 대법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검찰은 보강수사를 거쳐 고교 후배인 사업가의 탈세 혐의 재판의 정보를 수 차례 무단으로 열람한 혐의 등을 추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했지만 이번에도 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양 전 원장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최대 20일 간의 구속기간 동안 보강수사를 한 뒤 다음달 기소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에 맞춰 사법농단에 연루된 다른 전·현직 판사와 박근혜 청와대 고위 인사 등도 일괄 기소해 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사법부는 전직 수장이 구속되는 사태에 내홍이 불가피해 보인다. 일부 법관들은 검찰이 양 전 원장에 대해 법적 구속사유가 없는데도 여론에 기대 무리하게 영장을 청구했다고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고법 부장판사 등 중진급 법관들은 김명수(59·15기)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의 길을 열어줘 이 사태를 초래했다고 비판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개혁 성향의 젊은 판사들은 사법부 개혁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고 맞서고 있어 사법부 내부 갈등이 촉발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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