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비율 800%, 돈줄 마른 건설사들…삐끗하면 와르르

최정희 기자I 2025.01.21 05:00:00

[벼랑 끝 건설업②]
시공능력평가 100위권 건설사 재무상황 분석
부채비율 800% 넘는 곳도 3곳에 달해
공사미수금 2년새 세 배 증가한 건설사도 있어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건설업계 불황이 수년째 지속하면서 부도 위험에 떠는 건설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부채비율이 200%를 넘고 유동비율은 100%도 안 돼 삐끗하면 유동성 위험에 처할 건설사도 8곳이나 됐다. 작년 시공능력평가 순위 100위권 건설사의 재무상황을 분석한 결과다. 부채비율이 800%는 넘는 건설사도 3곳이나 됐다. 공사비는 늘어나는데 경기 악화에 미수금은 쌓이고 신규 수주도 감소 추세다. 2년 새 공사미수금이 세 배 급증한 건설사도 있었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 부채비율 9개월 만에 두 배·공사미수금 2년새 10배↑

20일 이데일리가 작년 시공능력순위 100위권 건설사의 재무상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GS건설(006360), 롯데건설 등 32곳에서 부채비율이 200%를 초과했다. 부채비율 300%를 초과한 곳도 13곳에 달했다. 상장사 또는 분기보고서를 공개하는 건설사는 2024년 3분기(9월 말) 보고서를 기준으로, 비상장사는 2023년 사업보고서를 기준으로 분석한 것이다.

부채비율이 800%를 초과해 부채의존도가 과도한 건설사도 3곳이나 됐다. 삼부토건(001470)은 작년 9월 말 기준 부채비율이 838.5%로 100위권 건설사 중 부채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수건설, 한양산업개발은 2023년 말 기준 부채비율이 각각 817.0%, 820.7%였다.

부채비율이 200%를 초과하면서 유동비율(유동부채 대비 유동자산 비율)이 100% 미만인 건설사도 8곳에 달했다. 금호건설, 삼부토건은 부채비율이 2023년 말 각각 260.2%, 403.0%에서 작년 9월 말 640.5%, 838.5%로 두 배 이상 급등했다. 금호건설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지난해 3분기 선제적·보수적으로 처리하면서 일시적으로 지표들이 악화됐다는 설명이다.

건설사들의 부채비율이 급등하고 유동비율이 저조한 것은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현금이 제대로 돌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건설사들은 공사 진행률에 따라 수익을 산정하는데 공사를 완료하고도 받지 못한 미수금이 증가하고 있다.

부채비율이 200%를 초과하고 유동비율이 100% 미만인 8곳의 공사미수금을 집계(작년 9월 말 기준)한 결과 공사미수금 합계액(전년도 매출액의 5% 이상 수주계약 기준)은 2조 3000억원(별도)으로 집계됐다. 2022년말(2조 5000억원)보다 감소했지만 작년(1조 8000억원)보다는 5000억원, 28% 더 늘어났다.

그나마 시공능력순위 10위권 건설사의 공사미수금은 2022년말 6조원, 2023년말 5조 1000억원, 작년 9월 4조 40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건설사들이 계열사 미수금 관리에 신경을 쓴 영향으로 풀이된다. 삼성물산(028260)은 2022년 말 공사미수금이 2조 4000억원에 달했으나 작년 9월 800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삼성전자(005930)가 발주한 평택 반도체 공장(평택 P3 Ph3)의 공사미수금이 2022년엔 9800억원에서 1억원 수준으로 감소한 영향이다. SK에코플랜트도 SK하이닉스(000660)가 발주한 충북 청주 공장(SK hynix M15 Ph-2 Project) 관련 공사미수금을 2500억원에서 72억원으로 줄이는 등의 노력으로 공사미수금이 이 기간 1조원에서 51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일부 건설사는 공사미수금이 2년 새 세 배 늘어나기도 했다. HL디앤아이한라는 2022년 말까지만 해도 공사미수금이 640억원 수준이었으나 작년 9월 1900억원으로 늘었다. DL이앤씨 자회사 DL건설은 지난 10일부터 평택 화양지구 기반 시설 공사를 공사비 미지급을 이유로 중단했다.

◇ 실적시즌 앞두고 긴장감 커진 건설업계

건설업계에선 향후 몇 년간 더 보릿고개를 넘어야 할 것이란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작년 실적 발표를 앞두고 걱정이 크다”며 “앞으로 2~3년간은 더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건설사 대부분이 12월 결산법인으로 1월 중하순경 작년 4분기 실적 공시를 앞두고 있는 데다 3월 말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영업적자 전환, 부채비율 악화 등이 예상된다.

준공을 한 후에도 미분양으로 자금이 들어오지 않은 ‘악성 미분양’이 늘어나고 있다. 악성 미분양 주택은 작년 11월 1만 8644가구로 2023년 말(1만 857가구) 대비 무려 72%(7787가구) 급증했다. 악성 미분양의 79.4%(1만 4802가구)는 지방에서 발생했다.

공사비가 2010년 이후 30% 넘게 오른 상황에서 경기 악화에 미수금은 커지는 데 신규 수주마저 악화하는 분위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3분기 누적으로 전국 건설수주액은 126조 8000억원으로 최근 3년(2021~2023년) 평균 대비 9.3% 감소했다. 특히 건설수주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는 민간수주가 17.7% 감소했다. 공공수주는 그나마 29.1% 증가했지만 올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25조 5000억원으로 1조원 줄어들면서 공공수주도 감소할 전망이다.

건설 선행지표인 주택 인허가 및 착공 건수도 악화했다. 주택 인허가 및 착공 건수는 작년 11월 누적으로 각각 27만 3000가구, 24만가구로 최근 3년 평균 대비 34.3%, 32.0% 감소했다.

김창수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책임연구원은 “공사원가 상승으로 건설사의 이익창출력이 둔화되고 있고 미분양 누적으로 운전자금 부담 등으로 현금흐름이 악화되는 데다 시행사 파산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 채무 현실화 등에 재무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나마 모기업이 자금을 지원해 줄 경우엔 재무지표가 악화하더라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롯데건설은 작년 1분기 계열사의 지원 등을 통해 시중은행과 2조 30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해 PF우발채무 차환 위험을 낮췄고, 코오롱글로벌도 작년 3월 최대주주 코오롱으로부터 3000억원을 지원받았다. 대부분의 건설사들은 이런 우산조차 없는 상황이라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갑작스러운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시공능력평가 58위 신동아건설은 이달 6일 검단신도시 파밀리에가 저조한 분양 성적을 대면서 만기 도래한 60억원을 갚지 못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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