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랍게도 그는 ‘남자가 아닌 여자’였고 ‘재벌 3세가 아닌 일반인’이었다. 제 아무리 실력있는 배우라도 소화하기 힘들어 보이는 이같은 거짓말에 누가 속을까 싶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피해자만 27명에 달하고 이들의 피해액수는 무려 30억원이 넘는다.
사기 전력으로 이미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는 전씨는 지난해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 불과 1년여만에 다시 사기 혐의로 지난달 29일 구속기소됐다. 재범률이 다른 범행보다 높은 사기범죄의 특성을 증명했다. 그런데 사기범은 징역형을 살고 나오면 그만이다. 피해자의 사기 피해 구제는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다.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다.
전씨 사례에서 출발한 사기범죄 실태 기획취재(본지 1일자 “몸으로 때우면 남는 장사” 매일 900명 사기에 털린다[사기공화국] 외) 도중 가장 놀란 건 주변에 사기 피해 경험자가 생각보다 많았다는 점이다. 매사 의심이 많고 비판적이라고 평가받는 기자들 중에서도 사기꾼의 덫에 걸렸던 과거 경험을 털어놓는 동료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속아서 벌어지는 범죄 특성상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한 사기 피해 사례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사기 피해자 5명 중 4명은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뜩이나 최근 몇년새 보이스피싱 사기가 급증하고 보금자리까지 앗아가는 전세사기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장 내놓을 수 있는 처방은 사기범죄 처벌을 강화하고 국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지만 보다 근원적이고 입체적인 사기 예방 솔루션이 마련돼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가 연일 싸우면서도 ‘사기꾼’에 대해서만큼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은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한다. ‘사기 치고 걸려도 몸으로 때우면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