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시쳇말로 ‘재벌 걱정’과 ‘연예인 걱정’은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적어도 유통가 재벌 걱정에 대해서는 맞는 말인 것 같다. 올 상반기 많은 유통기업의 성적표가 소위 죽을 쒔지만 주요 기업 총수들은 실적과 관계없이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보수를 받았다.
오히려 작년보다 더 높은 보수를 받은 총수도 있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지주(004990)와 롯데쇼핑(023530), 롯데웰푸드(280360), 롯데케미칼(011170), 롯데칠성(005300) 등 계열사 급여를 포함해 지난해 상반기보다 8.8% 늘어난 111억9000만원을 받았다. 박문덕 하이트진로(000080) 회장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2억8000만원 늘어난 47억5307억원을 받았다. 작년까지 2년 연속 ‘연봉킹’에 등극했던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해 상반기와 동일한 49억68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문제는 이들 기업의 올해 실적이다. 롯데그룹은 전통 핵심사업이었던 롯데쇼핑을 누르고 그룹 내 최대 매출을 올렸던 롯데케미칼이 올 2분기 77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5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다.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은 지난 6월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떨어졌다. 롯데쇼핑의 2분기 영업이익도 전년동기 대비 30.8% 떨어졌다. 다음 달 최대 50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에 나선다는데 업계와 증권가는 흥행 여부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CJ그룹도 마찬가지다. 올 상반기 CJ(001040)의 영업이익은 30.2% 감소했고, 주력계열사인 CJ제일제당(097950)은 36.5% 줄었다. CJ ENM(035760)은 적자전환했다. 하이트진로(000080)의 상반기 영업이익도 58.0% 줄었다.
사기업이고 기업마다 보수 책정 기준이 다른데 무슨 참견이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대기업 총수들은 다르다.
대기업 경영이 휘청이면 소속 직원들은 물론 국가경제도 함께 흔들리기에 위기 땐 공적자금 투입을 검토한다. 특히 기업 총수를 포함한 임원은 기본임금 수준부터 직원들과 체계가 아예 다르다. 당장 실적이 좋지 않은데 일단 할 일을 다 했으니 책정된 보수를 가져가는 것이라고 하기엔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올해 경제여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상황이다. 자금시장에는 돈줄이 말라붙어 신규 사업체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것은 물론 상장을 계획했던 기업들은 이를 연기하고 있다.
식품업계는 물류와 원재료값 상승에도 불구하고 제품가격을 인상할 수 없어 속을 태우고, 전통 유통업체들은 온라인 신흥 강자들에게 밀리는 모양새다. 그나마 해외에서 숨통을 돌린다지만 한자릿 수의 영업이익률도 겨우 기록하는 실정이다. 일부 기업들은 경영난을 감당하지 못해 수년 만에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연말이면 성과급을 지급한다. 올해 총수들의 연봉이 정확히 얼마나 될지는 연말이 돼 봐야 알 것이다.
최근 만난 한 지주사 임원은 “올 연말엔 아마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어떤 기업 총수가 얼마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자못 기대된다. 물론, 연말까지 실적이 확연히 좋아진다면 그게 가장 좋은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