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우리 국회가 이런 과도한 입법의 폐해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
우리는 국회를 법을 만드는 입법부라고 부르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법을 계속 ‘대량생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초 의회는 국민의 대표가 법을 직접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군주의 독재적 입법을 막기 위해 민중의 투쟁을 통해 얻어낸 산물이다.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입법을 저지한다는 의미 또한 큰 것이다.
법률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지극히 상식적인 국민의 시선에서 최근 우리나라의 입법문제를 생각해 보면 문제가 많다.
우선 국회의원 스스로도 법률안을 계속 많이 발의 하는 의원이 일을 열심히 하고 유능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듯하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의원별 법률안 발의 건수를 조사, 공표하고 마치 법률안 발의 건수가 의원의 활동지표인 양 선전하고 있다.
사실 나라의 각종 문제의 원인은 제도나 법률 조직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법이나 조직을 유효하게 활용하지 못할때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너무 많은 제도나 조직 또는 법률이 서로 엉켜 조화를 이루지 못함에 따른 문제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얘기다. 쉽게 새로운 행정조직을 만들거나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어쩌면 하수들이 선택하는 방안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인다. 특정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행정조직의 신설이나 새로운 법률의 제정은 미시적으로는 당해 문제를 해결한 듯이 보여 성과를 낸 듯 하지만, 사실은 다른 부문에서 더 큰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법률의 신설은 그 특성상 경직적 성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을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최근 국회의 입법사례를 보면 이런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입법과정에서 다수당의 폭주를 막기 위한 국회선진화법이 무력화되면서 과도한 입법이 양산되고 있다. 말초적인 포퓰리즘에 휩쓸린 법안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다수당이 힘의 논리를 앞세워 입법권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대통령 거부권이라는 적법 절차를 거쳐 폐기된 법안을 대체입법이라는 꼼수로 살려 밀어붙이려는 행태는 의회 민주주의의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다. 중국 고사에서 보듯 과잉 입법으로 국가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무분별한 법률안을 발의하는 의원들보다 대다수 국민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국가의 장래를 길게 보고 활동하는 의원들을 보고 싶은 게 국민들의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