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여행] 백제가 무너진 진짜 이유는 '배신' 때문이었다

강경록 기자I 2019.03.01 01:00:00

충남 예산 역사기행
백제 부흥의 최후 격전지 ''임존성''
흥선대원군이 탐한 조선 최고의 명당
''물 위의 숲'' 예당저수지를 걷다

백제 부흥의 최후의 격전지 ‘임존성’


[예산=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지금부터 약 1300년 전. 백제 사비성은 나당연합군에 함락됐다. 의자왕은 무릎을 꿇었고, 백성과 왕자는 전리품이 되어 당나라로 끌려갔다. 백제가 무너진 것이다. 비록 임금은 나라를 버렸을지라도, 백성은 아니었다. 그들은 신라와 당나라에 맞서 끝까지 싸웠다. 그 마지막 장소가 바로 충남 예산이다. 정확하게는 봉수산 어깨쯤을 휘감은 석성인 ‘임존성’이다. 이 성에서 무려 3년을 버텼다. 하지만, 난공불락의 성은 한순간 무너졌다. 백제 유민을 이끌던 장수의 배신이 결정적이었다. 그 장수가 임존성의 성주, 흑치상지다. 자신들을 이끌던 장수가 적군의 선봉에 선 것이다. 그 상실감은 결국 백제 부흥의 꿈마저도 사라지게 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이다.

백제 부흥운동 최후의 격전지 ‘임존성’으로 가는 예산 대흥면에는 예당저수지가 있다. 예당저수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물 위의 숲’이다.


백제 부흥의 최후의 격전지 ‘임존성’
◇백제 부흥운동의 최후 격전지 ‘임존성’

백제의 마지막 보루였던 ‘임존성’(任存城). 대흥면과 홍성군 금마면 사이에 솟은 봉수산(대흥산·484m)에 쌓은 둘레 2.4km의 석성이다. 일부 복원된 구간을 제외하면 무너져내린 옛 성곽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백제 유민의 한과 투혼, 그리고 배신과 좌절이 겹겹이 서리고 맺힌 성이다. 울창한 숲길이 있고 전망도 빼어나, 한나절 성곽 및 역사 탐방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임존성은 주류성과 함께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이자, 백제 역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이었다.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무릎을 꿇은 660년, 흑치상지와 의자왕의 사촌 복신, 승 도침이 임존성에 백제 유민을 이끌고 모여 3년 반에 걸쳐 결사항전을 벌였던 곳이다. 당나라 소정방 군대도 신라 김유신 군대도 “군사가 많고 지세가 험해 이기지 못하고”(삼국사기) 퇴각해야 했던 성이다. 그러나 결말은 허무했다. 복신·도침·풍왕자의 대립과 유혈극, 흑치상지의 당나라 투항에 이은 역공으로 성은 함락(663년)돼 백제 부흥운동은 끝난다.

임존성의 남서쪽 일부 성곽은 최근 복원해 옛 모습이 사라졌다. 대신 봉수산 동북쪽과 북서쪽 나머지 구간에서 무너져내린 옛 성곽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봉수산 등산로는 봉수산 휴양림 쪽으로 오르는 코스와 대련사 쪽 코스, 마사리(광시면) 쪽으로 오르는 임도 등 5개 코스가 있다. 마사리 쪽에선 굽이 심한 임도를 따라 차로 성벽 밑까지 오를 수 있다. 성곽 복원 공사장 팻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성안으로 든다.

성곽은 봉수산 정상 남동쪽 사면에 동서 방향의 길쭉한 타원형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바깥쪽만 성돌을 쌓고 안쪽은 자연지형을 이용한 퇴뫼식 석성이다. 복원한 성벽 아래쪽에선 옛 수로의 모습만 보이고, 성안 쪽 바위 밑엔 꽤 많은 물이 고인 샘터가 있다. 왼쪽 성곽을 따라 오르다가, 중앙 숲길을 관통해 북쪽 성곽을 오른 뒤 북문터를 거쳐 서남쪽 성곽을 타고 내려올 수 있다. ‘웬수산’(원수산). 임존성 남쪽에 바라다보이는 내성산(384m)의 별칭이다. 이 산에 오르면 임존성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나당연합군이 이를 활용해 임존성을 공격해 함락시켰기 때문에, 주민들이 이 산을 ‘웬수’로 여기게 됐다고 한다. 산이 그곳에 있었던 게 죄는 아닐진데, 진짜 ‘웬수’ 흑치상지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을 산에 풀었던 건 아닐지.

조선 최고의 명당에 자리잡은 남연군묘. 가야산의 기운이 뭉쳐있는 석문봉 아래에 묏자리를 만들었다.


◇두 왕을 만들고, 나라 망하게 한 조선 최고의 명당

예산에 최고의 명당이 있다? 없다?. 예산을 대표하는 가야산. 이곳에 조선 최고의 명당이 있었다. 가야산은 해인사를 품고 있는 합천의 가야산과 이름이 같다. 산세는 합천의 것에다 대면 어림없지만, 예산의 가야산은 풍수로 이름난 곳이다. 가야산의 기운이 뭉쳐있는 곳은 바로 석문봉 아래 남연군의 묏자리다. 남연군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다. 본디 남연군 묘는 경기 연천에 있었는데, 아들 대원군이 이쪽으로 옮겨왔다. 왕권에 대한 야심을 숨긴 채 안동 김씨 일가에게 갖은 수모를 겪고 있던 대원군이 지관을 불러 ‘왕이 될 지세’를 물었다. 지관이 ‘2대에 걸쳐 왕이 날 자리’로 꼽아준 곳이 바로 여기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원래 주인이 있었다. 가야사라는 절이었다. 이에 대원군은 불을 질러 절집을 태워버리고 그 자리에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옮겼다. 대원군은 미안했던지 가야사 맞은편 기슭에 보덕사(報德寺)라는 작은 절을 지어줬다.

남연군 묘를 등지고 올라서 보면, 왜 이 자리가 명당인지 금세 알게 된다. 왼쪽으로는 옥양봉과 만경봉이 청룡의 세를 이루고, 오른쪽으로는 가사봉과 가엽봉, 원효봉이 백호의 세를 이루고 있다. 이른바 좌청룡, 우백호인 게다. 앞으로는 탁 트인 덕산의 벌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기운 때문이었을까. 묘를 이장한 지 7년 만에 대원군은 고종을 낳았고, 고종이 왕위에 등극함에 따라 대원군은 왕권을 쥐고 흔들었다. 고종에 이어 대원군의 손자인 순종까지 왕위에 올라 지관의 말이 적중했지만, 순종을 마지막으로 조선의 519년 역사가 막을 내렸다. 비록 두 명의 왕을 만든 명당일지라도,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명당이 아닌 사람인 것을 흥선대원군은 알았을까.

예당저수지 최고의 사진 명소 중 하나인 ‘황금나무’


◇ 물위의 숲을 거닐다

오는 4월 개장 예정인 예당저수지 출렁다리
예산읍에서 출발해 응봉과 대흥이 가까워지자 예당저수지가 나타난다. 눈앞에 펼쳐진 저수지는 내륙의 바다처럼 넓고 푸르다. 과거에는 아산만까지 배들이 오갔으니 바다 냄새가 괜스럽지 않다. 응봉면 평촌삼거리부터 도로도 예당저수지와 나란하다. 길가로 물에 반쯤 잠긴 버드나무와 낚시꾼이 머무는 좌대의 풍경이 또 다른 볼거리다. 그 한갓진 시간이 마냥 부럽다. 그렇다고 조바심낼 까닭은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흥면 교촌리, 동서리, 상중리가 느림의 일상으로 말을 건넨다.

1964년 준공한 예당저수지는 전국 최대의 인공저수지다. 만수 면적이 1088㏊, 만수위는 22.50m. 만수 때 저수량은 4607만t이다. 이런 숫자와 단위만으로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면, 이 정도면 감이 오는지. 만수 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3.75배, 호수 둘레는 40km, 물론 다목적 댐이 만든 호수에다 비할바는 아니지만, 저수지치고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예당저수지를 제대로 보려면 물가를 따라 한 바퀴 도는 게 제격이다. 수변 도로를 따라 차나 자전거를 몰고 돌아보는 게 일반적인 여행법이다. 저수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물 위의 숲’이다. 나무 군락들이 저수지 아래로 아랫도리를 담그고 있다. 드문드문 수몰나무들이 서 있는 풍경은 다른 곳에서도 본 적은 있지만, 여기처럼 군락을 이룬 곳은 기억에 없다. 수몰나무는 바람 없는 날, 잔잔한 수면이 마치 잘 닦은 거울처럼 데칼코마니 풍경을 보여줄 때 가장 아름답다. 이른 아침이면 몽환적인 안개가 피어오를 때도, 해질 녘에는 수면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 때도 좋다.

물 위를 걷는 법도 조만간 생긴다. 예산군은 수면 위로 걸을 수 있는 수면산책로를 올해 12월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 또 응봉면 후사리에 길이 402m의 출렁다리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수면산책로의 일부 구간이다. 보행교 402m, 산책로 355m, 데크로드 1.7km 구간이다. 이 수면산책로와 출렁다리가 모두 완공된다면 예산을 대표하는 명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덕사 경내 전경


◇여행메모

△가는길= 수도권에서 출발하자면 서해안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면 당진나들목에서 내려서 32번 국도로 예산 방향으로 향하면 된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천안나들목에서 내려서 21번 국도를 타면 아산을 거쳐 예산으로 가닿는다.

△잠잘곳= 가족 단위라면 온천 워터파크를 갖춘 덕산온천의 리솜스파캐슬이 가장 낫다. 또 부부나 연인, 친구와 함께라면 온천욕이 가능한 덕산스파뷰 호텔도 좋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