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은 30일 “그룹 내 금강산관광사업을 전담해온 현대아산이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로부터 정 전 회장의 추모식과 관련해 방문 동의서를 받았다”며 “이에 따라 즉각 통일부에 방북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앞서 현대그룹은 정 전 회장의 추모식을 금강산에서 개최하기 위해 지난 11일 통일부에 ‘북한 주민 접촉 신청’을 했고, 통일부에 승인을 받은 이후 북측과의 협의를 진행해왔다.
통일부가 방북을 승인할 경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비롯해 이영하 현대아산 대표, 이백훈 그룹전략기획본부장 등 임직원 15명은 다음달 3일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에서 15주기 추모식을 개최할 계획이다.
현대그룹은 정 전 회장이 타계한 2003년 8월 4일부터 2015년까지 매년 금강산특구 온정각 맞은편 추모비 앞에서 추모식을 열어 왔다. 2016년에는 남북관계 경색으로 처음 방북 신청을 하지 않았고, 지난해에는 북측이 방북 요청을 거부하면서 행사가 무산된 바 있다.
현 회장이 남편인 정 전 회장의 금강산 추모식에 참석한 것은 지난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2009년과 2013년, 2014년 등 모두 3차례였다. 통일부가 승인해서 방북이 최종 성사될 경우 4년 만에 북한을 찾는 셈이다.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는 “올해는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 지 20주년, 중단한 지 꼬박 10년이 되는 해로 의미가 크다”며 “북측 허가가 나온 만큼 방북 결과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이 이번 방문을 계기로 대북사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번 방북이 최종 성사될 경우 현 회장은 북측고위 관계자들과 만나 자연스럽게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경협 사업에 대해 의견을 나눌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대그룹은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시설과 전력과 통신, 철도, 통천 비행장, 임진강댐, 금강산수자원, 명승지관광사업 등 7개의 기간사업 관련 사업권(30년)을 보유하고 있다. 당시 사업권 대가로 5억 달러(약 5350억원)를 지불했다.
이미 지난 5월 ‘남북경협사업 태스크포스팀(TFT)’을 출범하는 등 대북 사업 재개를 위한 사전 로드맵을 짜는 중이다. TFT는 현 회장을 위원장으로 주요 계열사 대표가 자문으로 참여하는 등 그룹 역량을 총집결했다. 관광 재개에 대비해선 현지 인력 수급과 시설 정비, 차량 조달 등 구체적 계획을 수립 중이다.
현대아산의 금강산·개성 관광 사업 중단 직전해인 2007년 매출액이 2550억원에 달했지만 10년 후인 2016년에는 910억원으로 60% 이상 줄었다. 주력 사업이던 관광 및 경협 부문은 전체 조직의 30% 수준으로 줄었고 건설에만 의존하면서 한-중 훼리의 선상면세점 사업, ODA(공적원조) 위탁 용역사업, 여행·행사용역·MICE·크루즈 사업 등으로 연명했다. 그룹도 마찬가지다. 현대로지스특스(현대택배), 현대증권 매각에 이어 그룹 주력이었던 현대상선마저 산업은행 자회사로 넘어 가면서 이제 자산규모 2조원 수준의 중견그룹 신세가 됐다.
유일한 기둥인 현대엘리베이터마저 최근 글로법 기업들의 국내시장 진출로 점유율을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사업 재개는 악화일로를 치달았던 경영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방북이 최종 성사되면 민간 교류의 물꼬를 트게 될 전망”이라면서 “현대그룹 입장에서도 현대엘리베이터에 현대아산이라는 성장엔진을 얻을 수 있어 그룹 재건의 희망을 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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