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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해질녘 서울 대학로 SH아트홀. 대기실 안 붉은빛 전구가 빛나는 화장대 앞에 두 사내가 앉았다. “오늘따라 머리카락이 유난히 뻗치네.” 허리까지 머리를 기른 한 사내는 헤어세팅기를 직접 가지고 다닌다. 머리를 말고 인조 속눈썹을 붙이는 과정이 여간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이제 브래지어를 안 차면 더 어색하다.” 불혹을 앞둔 그는 여유롭게 농담까지 건넸다. 하이힐을 신고 여자가 될 시간. 동성애자 차별을반대하는 레이디가가의 ‘본 디스 웨이’가 극장 스피커를 타고 대기실을 휘돌았다. “피부 좀 봐. 정말 예쁘다.” 손님을 맞기 위해 또 다른 사내가 분칠을 시작하자 이를 지켜보던 극장 여직원의 감탄이 새어 나왔다. 꽃무늬 실크 가운을 걸친 자태가 천상여자다.
두 사내는 오늘밤에 ‘여장남자’가 된다. 내달 2일까지 공연될 뮤지컬 ‘드랙퀸’을 위해서다. ‘드랙퀸’은 여성처럼 화장하고 행동하는 남성을 일컫는 말. 작품에서 블랙로즈 클럽 오마담 역을 맡은 배우 겸 연출자 이상곤(39)과 쇼걸 김소희를 연기하는 노현(27). 낮과 밤이 180도 다른 두 남자를 만났다.
-의상뿐 아니라 말투까지 진짜 트랜스젠더 같다. 어떤 준비를 했나
▲이상곤(이하 이): ‘드랙퀸’을 위해 3년 전부터 머리를 길렀다. 실제 드랙퀸쇼를 하는 이태원 T클럽을 가 여장남자들을 관찰했다. T클럽에서 일하는 니나노(예명)라는 이를 모델로 삼았다. “박복한 X” 같은 말을 자주 해 이런 것들을 대사에 녹였다. 하지만 듣기만 해서는 현실감 있는 표현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용기를 내 여장남자를 즐기는 이들이 모이는 카페 정모에 잠입했다. 여장하고서 직접 그분들을 만나 느낀 걸 대본에 옮겼다.
▲노현(이하 노): 함께 출연하는 하리수 누나 얘기를 많이 참고했다. 머리는 이전 작품 때문에 단발로 길렀고 이 배역을 위해 어깨까지 더 길렀다.
-연기라지만 말투까지 여성스럽다. 혹시?
▲이·노: 하하하. 평범한 육군 병장 출신 남자다. (이상곤은 “3개월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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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남자에 대한 시선은 아직 차갑다. 욕심 낸 이유는
▲이: 뮤지컬 ‘스노우드롭’에서 트랜스젠더로 나오는 오마담 역이 매력적이라 이를 부각해 외전 식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연출작을 찾다가 특별한 소재가 없을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했고. 드랙퀸쇼를 보니 화려하면서도 재미있고 메시지까지 담고 있어 좋은 소재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재 때문에 투자자가 잘 붙지 않았다. 작품이 빛을 보기까지 3년이 걸린 이유다.
▲노: 오디션 공지를 보고 ‘여장 정도 하면 되는 거겠지’라고 간단히 생각했다. 그런데 만만치 않더라. 드랙퀸바를 가고 시쳇말로 ‘멘붕’에 빠졌다. 직접 보니 충격이더라. 그날 이 연출께 울면서 “못할 거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연출이 두 시간 넘게 설득했다. 여러 오디션에서 낙방을 많이 한 후 겨우 얻은 배역이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결국 마음을 고쳐 먹고 출연했다.
-연기하기 어려운 부분은
▲이: 오마담 솔로곡 중에 ‘내가 이렇게 태어나서 너무 더러워’라는 부분이 있다.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에 대한 울분을 표현하는 부분이다. 이 지점에서 감정표현이 어렵다.
▲노: 남자가 아니라 철저히 여자로서 남자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 감정을 표현하기 쉽지 않더라. 마음속 거부감을 깨려 노력했다.
-파격적인 내용으로 곤욕을 치른 적은
▲이: 뜻밖에 없다. 남성 관객이 공연을 불편해하지 않아 놀랐다. 더러 울기도 하더라. 일종의 속풀이랄까. 어떤 부부가 공연을 함께 보러왔는데 동성애 혐오자이던 남편이 작품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걸 보고 놀랐다는 내용을 후기로 올려주신 적도 있다. 공연 시작할 때는 티켓 예매 성비가 여성이 98%로 압도적이다가 한 달이 지나니 남성 관객 비율이 30% 가까이 올랐다.
▲노: 공연 전 포스터를 보고는 어머니가 ‘넌 어디 있니?’라고 물으시더라. 남자 중에 넌 없다는 거다. 그래서 난감했는데 공연 보시고는 뿌듯해하시더라.(웃음)
-여성스러운 성격으로 학창시절에 힘든 일은 없었나
▲이: 중·고교 때 별명이 ‘순심이’였다. 여성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움츠러든 적은 없다. 친구들 관계도 내가 주도했던 편이고. 아직도 머리 긴 내가 길을 지나갈 때 간혹 어린 남자아이가 ‘왜 남자가 머리 길러요?’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풍토에서 자란 탓이다. 성소수자를 둘러싼 문제도 마찬가지다. 성소수자는 문란할 거로 생각하는 데 반대로 (내가 만나 본 사람들은) 더 깨끗하고 순정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드랙퀸’이 이런 선입견을 깨는 작업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드랙퀸’을 무대에 올리고 드랙퀸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미안하더라. 그만큼 세상이 그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는 소리다. 난 있는 그대로 보여줬을 뿐이다. 앞으로도 이런 세상의 선입견을 얘기하는 작품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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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이 좋았다. 기존에는 날 가십거리로 활용하려는 작품 섭외가 많았다. 반면, ‘드랙퀸’은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래서 뮤지컬 출연을 처음 결정했고, ‘드랙퀸’ 오마담 역을 맡았다. 내가 겪은 일이고 내 주위 친구들이 아직도 겪고 있는 일이 녹아 있었다. 2막에서 오마담이 순정을 바친 남자에게 버림받고 울면서 어머니한테 전화하는 신이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배우들이 이 작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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