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을 방문,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다. 이 사건이 유명한 ‘브란트의 무릎 꿇기(Kniefall in Warschau)’이다. 나치 독일은 2차 대전 때 바로 이웃국가인 폴란드에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브란트 총리는 과거를 사죄하고 폴란드와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진솔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과거 봉건 군주시대 때 전쟁에서 항복했을 때를 제외하곤 근현대사에서 볼 수 없는 일이다. 브란트 총리의 무릎 꿇기는 나치 독일이라는 국가 권력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국가 최고지도자의 무한 책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 정부는 그동안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 배상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왔다. 독일 정부는 199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 50주년 기념일을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는 날로 공식 지정했다. 또 2000년 강제 노역에 동원된 사람들에게 국가가 배상하는 기관인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을 만들기도 했다. 독일 정부는 2005년 5월 8일 2차 대전 패전 60돌을 맞아 수도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광장에 학살된 유대인 600만여 명을 추모하는 대형 조형물을 세웠다.
반면 일본 정치지도자들은 대부분 과거의 전쟁 범죄를 부인해왔으며, A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왔다. 이들의 행위는 전쟁 책임에 대한 부정이며, 침략전쟁으로 피해를 입힌 국가들에 대한 도발이다. 이번 8월 15일에도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다. 이들 중에는 민주당 정부의 각료들인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과 하타 유이치로 국토교통상도 있었다. 마쓰바라 위원장은 이 대통령의 일왕 사죄 요구에“예의를 잃은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이 일왕에 직격탄을 날린 것은 일왕이 국가를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입헌군주제인 일본에선 국왕은 명목상 국가 최고지도자이지만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한다면 국왕이 진정으로 공식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키히토 국왕은 1990년 5월 도쿄를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에게“일본에 의해 초래된 불행한 시기를 생각하며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길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통석의 염은 애석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사죄의 의미라고 볼 수 없다.
아키히토 국왕과 부친 히로히토 국왕은 지금까지 2차 대전을 일으킨 것에 대해 사죄한 적이 없다. 일본은 2007년부터 히로히토의 생일인 4월 29일을‘쇼와의 날’이라는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쇼와는 히로히토의 연호이다. 전쟁 책임자의 생일을 국경일로 기린다는 것은 일본이 과거사를 전혀 반성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일본이 독일의 반만 본받았다면 벌써 우리나라의 좋은 이웃이 됐을 것이다.
이장훈(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