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코리아 버거' 러시아를 점령하다

조선일보 기자I 2006.08.26 09:40:30
[조선일보 제공] 직경 6.2㎝, 무게 28g짜리 초코파이가 러시아를 점령했다.

초코파이는 시베리아 최북단 원주민 비상식량이요, 지상군(軍) 일부 비상식량이다. 한국 위성을 대신 발사했던 우주기지 우주군에게 제공하는 간식이기도 하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에서도 사할린 섬 구멍가게에서도 어디서나 사 먹을 수 있는 국민 간식이 됐다. 초코파이는 러시아에서 한국 식품의 위력을 대변하고 있다.

오리온이 초코파이를 내세워 한국 제과업계 대표로 극동에 진출한 지 13년만이다. 오리온은 24일 수도 모스크바에서 170㎞ 떨어진 트베리시(市)에 현지 투자 공장(2만㎡)을 완공, 직접 생산에 나섰다. 행사에는 담철곤 회장과 주병식 해외담당 부사장 등 20여 명의 중역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 공장에서 초코파이와 스넥류를 연 7000만 달러 이상 생산할 예정이다.

김정수 오리온 러시아법인장은 “현지 공장 가동은 맛의 현지화와 신선도 등 품질의 최적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장기적으로 독립국가연합(CIS) 지역과 동유럽 진출을 위한 세계화 기지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리온의 해외공장은 중국에 이어 두번째다. 현재 생산직 직원은 500명 수준이지만 내년 공장을 확장하면 1500명이 근무하게 된다. 현지 공장 설립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이용한 물류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동안 초코파이 96개들이 1박스당 물류비용이 1달러나 지출돼 수익 창출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현지 공장 가동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초코파이는 열량을 필요로 하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딱맞는 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초코렛이 함유된 초코파이는 혹한(酷寒)의 땅에서 버텨야하는 러시아인의 식생활 필수품이 돼버렸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데다 초코렛이 머리를 좋아지게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러시아인에게 한국 초코파이는 그야말로 인기였다. 최근에는 초코파이에 계란함량을 늘리면서 러시아인 입맛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러시아에서 팔리는 초코파이는 월 30만 박스. 수량으로는 중국보다도 10만 박스가 더 팔린다. 가격은 개당 6루블(200원)로 한국과 비슷한 가격이다. 초코파이는 올 5000만달러 이상 약 5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오리온 러시아 공장 완공을 계기로 초코파이를 비롯 연말까지 9가지 제품을 출시 예정이다. 법인의 올 예상 매출액은 7500만달러. 2008년 1억달러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오리온의 성공은 초코파이맨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초코파이의 러시아 진출 배경은 1990년 수교 직후 한국을 찾아온 보따리상들이 일상처럼 마시고 먹던 차와 까만 빵 대신 차에다 ‘한국의 까만 빵’(초코파이)를 찾아 먹으면서 시작됐다. 이를 간파한 마케팅 팀이 서둘러 러시아 진출을 시도하면서 대박을 터트렸다. 오리온은 93년 블라디보스토크에 첫 사무소를 개설한 뒤 TSR루트를 타고 1만㎞의 대장정 끝에 모스크바까지 진출하기까지는 지사원들은 그야말로 눈물을 흘리면서 초코파이를 먹어야 했다.

19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수입제품 가격이 4배 이상 급등하면서 유통망이 붕괴되자 박종현 모스크바 지사장 등 초코파이맨들은 10만 박스(100개 컨테이너 분량) 초코파이를 할당해 트럭에 실고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도매상을 찾아다니며 한 두박스씩 파는 등 몸으로 때우는 판매전략을 펼쳤다.

현재 단신 부임중인 이동일 노보시비르스크 지사장은 시베리아 땅에서만 연간 1115만여개의 초코파이를 팔며 1500만 달러의 매출을 책임지고 있다.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주민들까지 찾아다니면서 세일즈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파견된 17명의 직원들은 러시아를 동서남북을 나눠 공략하고 있다.

모스크바가 초코파이 주력 시장이 된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그동안 극동 시베리아에서 절대적인 판매량을 차지해왔던 것이 어느새 모스크바 공략으로 이어져 이 지역을 중심으로 전체의 약 65%를 차지하고 있다.

오리온의 러시아 입맛 사로잡기는 한편으로는 철저한 품질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 초 김정수 오리온 러시아법인장이 갑자기 초코파이 2만3000박스 전량 처분지시를 내렸다. 25만달러 상당이었다.

현지 직원들이 반발하면서 판매를 주장했지만, 그는 “초코파이 맛이 품질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폐기를 강행했다. 이 소문은 러시아 제과업계에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오리온의 이미지는 그날 이후 급상승했다.

또 ‘프시그다 베즈제 들랴 프세흐’(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을 위한 멎진 친구)라는 문구를 내세운 광고 마케팅도 한몫했다. 컨설팅업체인 AC닐슨 조사 결과, 오리온은 러시아 파이 시장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쯤되니 스위스 네슬레사 등 경쟁업체들이 ‘오리온 따라잡기’를 전략화할 정도로 오리온은 러시아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초코파이 진출 이후 시베리아 등 러시아 전 지역에는 오리온이라는 가게들이 줄지어 생겨났고, 일반 제과점에서도 초코파이를 만들어 팔려는 붐이 생겨났다. 초코파이는 ‘코리아 버거’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지난해 해외 판매만 1000억원으로 국내 매출액(860억원)을 돌파했다. 현재 4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지만, 해외 매출의 90%는 러시아와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오리온 러시아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담철곤 회장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오리온은 내수시장에서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 해외 전략시장 위주로 재편, 장기적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나가겠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