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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채 상병의 입수는 누가 결정한 것일까

이승현 기자I 2023.08.24 05:00:00

군 수사당국, 사단장 등 고위간부 혐의 제외한 결과 발표
현장지휘 간부 2명, 여단장 지시 어기고 입수 직접 지시
군 부조리 다룬 DP시리즈서 고위간부는 ''책임회피 달인''
상급자의 애매한 지시 여부, 경찰 수사 통해 밝혀야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국방부가 지난 21일 고 채 상병 사건에 대한 재검토 결과를 내놨다. 채 상병은 지난달 19일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맨몸으로 집중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급류에 휩쓸려 숨진 채 발견됐다.

당초 해병대수사단 조사에서는 사망 사고가 난 해병대 1사단의 임성근 사단장을 포함해 총 8명의 간부에게 범죄 혐의점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재검토에서는 현장에서 장병들에게 입수를 지시한 대대장 2명에 대해서만 혐의점을 인정했다. 임 사단장 등 4명은 혐의를 제외한 사실관계만 적시했고, 하급간부 2명은 아에 혐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국방부조사본부는 임 사단장의 혐의를 제외한 이유에 대해 “수색활동과 관련된 지휘계선에 있거나 현장통제관으로 임무를 부여받은 4명(임 사단장 포함)은 문제가 식별됐으나 일부 진술이 상반되는 정황도 있는 등 현재 기록만으로는 범죄의 혐의를 특정하기에 제한됐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사단장이 수색 활동 지시를 한 것은 맞지만 위험한 상황에 입수하라고 해 채 상명을 사망하게 했는지 여부는 불명확하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임 사단장은 실종자 수색 전날 장병들의 복장과 간부들의 현장지휘와 관련해 지시를 내렸다.

또 범죄혐의를 인정한 대대장 2명의 경우 장화 높이까지만 입수 가능하다는 여단장의 지침을 어기고 입수를 직접 지시한 것을 문제삼았다.

하지만 이상하다. 군대에서 상급자가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을 하급자가 어기고 무리하게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할까.

이런 궁금증에 대한 힌트를 이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군 부조리를 주제로 다룬 넷플릭스의 ‘DP 시리즈’에서 찾을 수 있다.

DP 시즌1에서 헌병대 소속 조석봉 일병이 탈영을 하자, 일을 크게 벌이기 싫었던 천용덕 헌병대장(중령)은 하급자인 임지섭 대위를 꼬드겨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시킨다. 본인이 결정하지 않고 임 대위가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천 중령은 나중에 문제가 커지자 임 대위에게 “니가 결정한 것”이라며 책임을 떠넘겼고 임 대위는 보직해임된다.

DP 시즌2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무장탈영한 김루리 일병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군 당국은 김 일병의 사살을 계획한다. 최종적으로 발포 명령을 내려야 하는 순간, 국방부 법무실 서은 중령은 법무실장인 구자운 준장에게 발포 명령을 내릴지 말지를 묻지만 “알아서 판단하라”는 답을 듣는다. 결국 서 중령은 발포명령을 내리지 못했고 이후 이 일에 책임을 지고 군복을 벗는다.

DP 시리즈에서는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군 고위급 간부들의 모습은 죄다 책임 회피의 달인이다. 애매한 말로 지시하고 결과가 좋으면 내 공, 나쁘면 하급자 책임으로 돌린다.

과연 현실은 다를까. 혹시 해병대 사단장과 여단장이 DP 시리즈에 나오는 군 고위간부들처럼 애매하게 지시했고 현장 간부들이 ‘알아서 기는’ 판단을 한 것은 아닐까. 경찰 수사에서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하는 부분이다.

어떤 조직이든 상급자는 명확한 지시를 해야 하고 그 지시가 잘못됐을 경우 책임을 져야 영이 서고 조직이 똑바로 돌아간다. 상명하복이 생명인 군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그래야 청춘을 국가에 바친 청년들과 생때같은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님들이 안심할 수 있다.

지난달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왼쪽)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옆으로는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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