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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 국면에서 ‘야외 노 마스크’ 등 일상의 여유가 익숙해질 때쯤 들려온 원숭이두창 국내 유입 소식은 달갑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최근 원숭이두창의 치명률은 3~6% 수준으로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30대 직장인 A씨는 “대유행이 심각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하루에도 수천명씩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는데 원숭이두창이라니 점점 바이러스 세상이 되어가는 듯하다”고 말했다. 40대 주부 B씨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또 전염병이라니 ‘올게 왔구나’하는 심정”이라며 “사태가 심각해지면 이번에도 백신을 맞아야 하는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인 원숭이두창은 여행심리도 위축시키고 있다. 원숭이두창 국내 첫 확진자는 독일에서 지난 21일 입국한 내국인이다. 이에 유럽 지역 여행을 계획 중인 이들은 예약한 항공권을 취소하기도 했다. 학원을 운영하는 김모(48)씨는 “연말 항공 마일리지 소멸을 앞두고 독일로 가는 항공권을 비즈니스로 예약했는데 코로나19에 최근 원숭이두창까지 확산하고 있다는 소식에 부담감이 커져서 취소했다”고 아쉬워했다.
방역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 21일 의심환자로 신고된 외국인은 음성 판정이 나왔지만, 입국 당시 의심 증상이 있는데도 공항 검역 과정에서 증상이 없는 것으로 신고했다. 입국 후 하루가 지나서야 병원에 내원한 뒤 격리돼 그 사이 대인 접촉을 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 ‘검역 구멍’ 문제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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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두창 관련 보도가 늘면서 시민들은 막연한 공포감을 키우고 있다. 대학생 이모(26)씨는 “코로나19는 겉으로 보이는 증상은 없었지만, 원숭이두창은 종기처럼 보이는 혹이 피부에 전체적으로 퍼져있는 동영상이나 사진이 너무 끔찍하더라”며 “최대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숭이두창의 발생 원인과 확산을 질병으로 접근하지 않고 확진자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심리로 인해 코로나19 때처럼 차별과 혐오 조장이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실제 코로나19는 인종·종교·성소수자 등 곳곳에서 ‘혐오의 전염’을 일으켰다. 2020년 5월 초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이 대표적이다. ‘용인 66번’ 확진자가 이태원의 유명 ‘게이클럽’들을 다녀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성소수자들은 십자포화를 받았다.
원숭이두창도 그러한 조짐이 보인다. 이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동성 간 성관계로 원숭이두창이 확산됐다’는 식의 개인의 성적 지향에 대한 혐오 조장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이들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원숭이두창이 성병은 아니지만, 주로 남성 간 동성애를 통해 감염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영국 보건안전청(UKHSA)이 ‘원숭이두창 감염 위험이 높은 동성애·양성애 남성들에게 백신 접종을 권고했다’는 등의 언급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성소수자단체에서 활동하는 한 회원은 “감염병이 왜 일어났는지, 그에 대한 예방법은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책임을 돌릴 대상이 누구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전염병의 위험도는 전염력과 치사율에 따라 결정되는데 건강한 사람이 걸리면 중증도가 낮지만, 확진자가 증가하고 면역저하자가 감염되면 중증으로 발전해 사망자도 나올 수 있다”며 “(동성애자라든 둥) 감염병 확진에 대한 ‘낙인’이 이뤄지면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숨게 되고 통제가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