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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H 기업은 지난해부터 블록체인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면서 자회사인 A사 주도로 이를 진행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말 ICO(공개 암호화폐 모집) 합법 지역인 유럽의 한 국가에 B재단이란 법인을 세우고 해커톤 대회를 비롯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B재단의 실질적인 소유주는 모기업인 H사 대주주다. B재단이 최근 국내에서 주최한 해커톤 대회를 보면 A사는 물론 모기업인 H사도 후원사로 참여했다.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관계지만, A사가 B재단에 관여하고 있다는 내용을 기사에 언급하자 홍보 담당자가 기자에게 ‘사실과 다르다’며 항의 전화를 건 것이다.
형식상으로는 별개 법인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A사가 B재단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항의하는 논리대로라면 H사는 대주주가 밝힌 블록체인 사업 청사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이런 내용의 반문에 H사 관계자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다.
최근 화제가 됐던 ‘돈스코이호’ 인양 추진업체인 신일그룹은 보물선 인양을 주제로 ICO를 진행한 ‘신일골드코인’에 대해 “우리와 관계없는 싱가포르 회사”라고 말했다가 관계가 있다는 가능성이 알려지며 신뢰성이 떨어졌다. 결국 신일그룹 대표가 사임을 표하는 등 후폭풍이 일고 있고, 경찰이 전담 수사팀을 꾸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ICO가 사실상 불법인 현재 국내 상황에서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둘러대는 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연관성을 부인해가며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는 결국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강화할 뿐이다. 투자자를 기만하는 행위는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을 뿐더러, 건실한 다른 사업자들마저 어려움에 처하게 할 수도 있다.
블록체인이 ‘제2의 인터넷’이라는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의 기만적 행위가 근절돼야 한다. 혹여나 법적·도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둘러댄다면 투자를 받을 자격이 없다. 건전한 생태계를 위한 업계의 자발적 움직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는 이제 분명하다. 현재의 문제점들이 초기의 혼란함으로 그치고 순리대로 흐르는 질서가 ICO 세계에 자리잡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