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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규 서울변회 회장 "연고 변호사 재판부 재배당 전관예우 차단 최선책"

조용석 기자I 2015.08.17 05:00:00

형사사건 표준계약서 배포…시간제·항목합산제 등 4가지
수임료 부가세 헌법소원..액수 가이드라인 제시는 추후에”
성공보수 없어져도 전관예우 지속..시스템으로 막아야”
“변호사 병원처럼 손쉽게 찾아가야..로스쿨간 실력차 우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전관예우 타파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이 시행중인 재배당 제도가 확대 실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 한대욱 기자)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지난달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 하나가 법조계를 발칵 뒤집어 놨다. 대법원은 15쪽짜리 판결문을 통해 형사사건 성공보수 무효 판결을 내렸다. 변호사가 법치주의 실현의 한 축으로 정의와 인권을 수호해야 하는 공적인 지위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착수금을 받고 일을 시작해 의뢰인의 구속 여부나 재판결과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 오랜 관행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곳이 서울지방변호사회다. 서울변회는 판결 직후 형사사건 수임계약 모델 확립을 위한 실무진(TF)을 구성하고 표준안 만들기에 돌입했고 지난 14일 회원 변호사들에게 4가지 종류의 형사사건 표준계약서를 배포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변호사 단체가 만든 첫 표준 계약서다. 국내 변호사 열명 중 7명은 서울변회 회원이다.

서울변회가 표준계약서 양식이 배포한 14일 김한규(45·사법연수원 36기) 서울변회 회장을 만났다. 김 회장은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것 같아 먼저 시작했다”며 “타 지역 지방변호사회에도 표준계약서를 보냈다. (먼저 시도해줘서)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번 판결이 법조계의 고질병인 전관예우 타파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 전관 변호사는 ‘성공보수 문제로 싸울 일 없이 기본급부터 세게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좋아하더라”며 “전관예우 깨기는 법원시스템 개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변회의 형사사건 표준계약서에 대해 설명해 달라.

△표준계약서는 순수시간제·항목별합산제·항목별가산제·분할제 등 4가지로 유형으로 나뉜다. 순수시간제는 시간에 따라 돈을 받는 이른바 ‘시간급’이고 항목별합산제는 변호사가 사건 수임 후 수행할 업무내용을 세분화해 각각의 금액을 정하고 이를 합산한 금액을 받는 방식이다. 항목별가산제는 업무내용을 항목화 한다는 점에서는 항목별합산제와 동일하지만 기본금을 받고 업무를 수행할 상황이 생기면 그때 계약 당시 정한 기준에 따라 보수액을 산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분할제는 포괄적으로 수임료를 약정하되 분할지급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표준계약서는 강제성은 전혀 없다. 성공보수 무효 판결 후 변호사들의 혼란을 막는 동시에 변호사 단체가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수임계약 표준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본금 등 액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달라는 요청도 있다.

△변호사 단체가 임의로 가이드라인을 정하면 변호사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저항도 거셀 것으로 판단했다. 가이드라인 제시는 변호사와 국민들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고 난 뒤에 결정할 문제다. 표준계약서는 1년 정도 시험기간을 거친 뒤 보완할 예정이다. 그때도 액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지정해달라는 요청이 계속된다면 다시 논의하겠다.

-형사사건 수임료에 붙는 부가가치세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대법원이 성공보수를 무효로 판단한 것은 ‘변호사는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배경에서 시작한다. 형사 변호사들의 사건 수임을 단순영리활동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공적영역을 수행한 결과로 받는 형사 사건 수임료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것도 맞지 않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재판청구권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 형사사건 부가가치세 면세와 관련한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할 계획이다.

-성공보수 무효 판결이 전관예우나 연고주의 타파로 이어질까.

△그렇지 않다. 국민들은 본인이나 가족 중 누군가 구속되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처지가 되면 급한 마음에 사채를 빌려서라도 재판부와 연고 있는 전관 변호사를 찾아간다. 조금이라도 유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시장에 아무리 변호사가 많아져도 전관예우가 제도적으로 완전히 불가능해지지 않는 한 전관 변호사 선호현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대법원이 전관 변호사들이 고액 수임료를 받는 대신 짊어지는 결과에 대한 부담마저 덜어준 것이다. 서울변회 회원 123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관예우 및 연고주의 타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34%(420명)로 가장 많았다.

-전관예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서울중앙지법 형사부처럼 시스템으로 막아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부는 지난 1일 이후 접수된 형사합의사건부터 재판장과 변호사가 대학이나 사법연수원 동기 등의 연고관계가 있을 경우, 재판장이 요청하면 다른 재판부에 배당하기로 했다.) 국민들에게 전관예우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모든 법원이 어렵다면 최소한 대법원, 부산이나 광주 등 주요 지방법원에서라도 서울중앙지법 형사부처럼 제도화해야 한다. 서울변회는 전관예우를 방지할 수 있는 법령안을 만들어 다음 달에 법사위 등에 전달할 계획이다. 전관·연고 변호사를 찾지 않는 분위기가 돼야 수임료도 합리적으로 변하고 변호사 시장도 고르게 발전할 수 있다.

-이상적인 변호사 시장은 어떤 것인가.

△병원 같은 시스템이다. 일반적으로 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큰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특별한 고민 없이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간다. 이는 의사가 기본적으로 의료실력이 있고 합리적인 치료를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도 그래야 한다. 변호사들도 이혼전문이나 건설전문 등의 타이틀을 달긴 하지만 사실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마친 법조인이라면 특허 같은 특수 분야를 모두 제외하고는 모두 소화할 수 있다. 전관예우가 사라진 후 법조시장이 균형 있게 발전하려면 대부분의 변호사가 비슷한 수준의 법률소양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25개 로스쿨간의 실력차다. 사법연수원이라는 단일기관에서 교육받던 때와 달리 로스쿨 졸업생들은 교육환경에 큰 차이가 있다. 모든 로스쿨에서 최소한의 법률소양 기준에 충족하는 법률가들이 나온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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